[단상] 한 발 쉬어가자

지난 1월 말 직원들과 신년 테니스 대회를 열었다.

 

조 결승전까지 잘 갔는데 결승전에서 우리 조가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지고 있었다. 자꾸 내 파트너가 볼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왜 그러냐고 뒤를 돌아 봤더니, 내 파트너는 내 뒤에서 나를 향해 답답하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왜 그래요?”하고 물었더니 “볼을 그렇게 치니 제가 받을 수가 있나요?”라고 대답했다.

 

결국 내가 볼을 넘기긴 넘겼어도 상대방이 치기 좋게 주니까 파트너가 이를 받아 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잘못은 내가 한 것이다. ‘아차 내가 잘못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리곤 정신 차려 나름대로 열심히 경기에 임해서 역전승을 일궜다. 맞다! 우리는 항상 남이 잘못해서 일을 그르친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못하고 남의 탓만 하고 살고 있다.

 

요즘 세상이 어지럽다. 아니 혼탁스럽다. 무엇이 정의이고, 어느 것이 옳은 일인지 분간이 안간다. 급변하고 있는 시대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기 때문이라고 단정해 버릴 일이 아니다.

 

과거의 선(善)이 악(惡) 처럼 느껴지고, 과거의 악(惡)이 선(善) 인양 의기양양하다. 자신과 이질적인 생각과 행동에 대해선 가차없이 단죄하고, 남의 비판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고는 오히려 큰 소리 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나는 안 그런데 너는 그렇고, 너는 안 그런데 나는 그렇다’는 차원이 아니다. 남이 보면 나부터 그런 비난의 대상이라는 지적에 결코 자유스럽지 못하다.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것이 상식인 줄 알았는데, 판사가 인터넷에 일반인으로서는 듣기 거북한 표현을 거침없이 하고, 법령에 위반돼 처벌받을 각오를 하고 진실을 밝힌다면서 판결 경위를 공표해도, 처벌을 못하는 지 안하는 지 이에 대한 조치가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상대편이 하면 성희롱이니, 여성차별이니 온 세상이 떠나가라 비판하다가도 자기편을 격려하는 눈살 찌푸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몰염치한 행태가 비일비재한 세상이 돼 버렸다.

 

허위사실을 유포해 대상자는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이 방치되고 있는 사회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법치라고 하는데, 내 맘에 안 맞는 법이면 법 자체가 잘못된 것이니 이를 위반해도 되며, 오히려 위반한 사람이 영웅 행세를 하는 무법천지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이제는 다반사가 된 것이다.

 

초등학생 무상급식 실시 여부에 대해서는 목숨을 걸고 싸우더니, 학교 폭력 방지에 대해서는 소걸음 수준의 대책 마련에 머뭇거리고 있다. 점심 값을 누가 부담하는가가 더 중요한 일인가? 폭력에, 왕따에, 외로움에, 남몰래 흘리는 어린아이들의 눈물과 뼈아픈 가슴앓이를 어루만져 주고 예방하는 일이 더 급한 일인가? 누구를 위한 정책 마련이며, 누구를 위한 정치·행정을 하고 있는가? 나 자신부터 부끄럽고 염치없어 시민분들 뵐 낯이 없다.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 나갈 것인가.

 

우리 모두 한발 쉬어 가자! 옛말에 돌아가는 것이 빠른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차분히 생각을 해보자. 남의 입장이 되어 보자. 남의 눈의 티는 보면서 내 눈 속에 있는 대들보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에 앞서 어떤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거창하게 사회 명망가를 동원하여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하는 호들갑을 떨지 말자. 먼저 가족끼리 모여 우리 가족들부터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서로 논의하여 선정하고 실천해 보자.

 

나부터 가족회의를 열어 봐야겠다. 그런데, ‘아빠나 잘 하세요’라는 핀잔부터 받을까봐 두려운 마음이 앞서는 것이 나만의 기우일까?

 

여인국 과천시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