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참회가 있는 정치

음력으로 3월은 봄의 절정입니다. 산이며 들이며 도심 곳곳이 온갖 색의 꽃과 연초록 잎으로 반짝입니다. 소납이 있는 절 아래 재래시장 좌판에는 고사리, 취나물, 엄나물, 머위나물 등 봄나물이 그야말로 지천입니다. 춘삼월 호시절이라고, 그래서 봄은 예나 지금이나 희망인가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5년마다 한번씩 이와는 다른 봄을 맞고 있습니다. 자연의 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희망 보다는 실망과 한숨이 더 많이 생기곤 하여 마음이 언짢은 봄, 올해 봄도 그런 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 시기가 가까워지면서 이전 대통령들 때와 마찬가지로 권력형 비리문제가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는 것일까요?

소납은 자기반성, 즉 참회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참회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불교식 수행법입니다.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얘기하는 회개나 고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대부분 항상 남을 탓합니다. 가끔 사과를 하는 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 내용을 보면 자신이 직접 잘못한 것은 없고 권력의 핵심이 아니다보니 잘못을 막지 못해 미안하다는 정도의 이른바 꼬리 자르기 식입니다.

이처럼 그간 우리 정치는 어느 정당을 막론하고 떠나는 자에게 덤터기 씌우기를 반복해 왔고 또 이것이 통했습니다. 그러니 굳이 참회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덤터기 씌우기식 정치가 가능했던 것일까요? 소납은 주권자이자 유권자인 국민들의 망각과 무관심이 자초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현 정부와 여당은 물론 과거 정부와 여당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여러 사람들이 옷을 바꿔 입고 화장을 고친 채 마치 새로운 인물인 양 자신이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며 속속 대통령 후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분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하나같이 상대는 문제가 많으니 나에게 한 번 기회를 달라는 식입니다. 자신에 대한 참회의 말은 듣기가 힘듭니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참회는 마음속으로만 뉘우치는 것을 넘어서 남에게 뉘우침을 말로 표현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몸소 중생을 교화하실 당시부터 잘못을 뉘우치는 법을 중요시하여 포살(布薩)과 자자(自恣)라고 불리는 참회법을 행해오고 있습니다. 포살은 구성원들이 15일마다 한자리에 모여서 계율이 적힌 책(戒本)을 외워가며 자신이 지은 잘못의 수를 세고 잘못이 있으면 스스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참회한 후 더 이상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을 큰 스님 앞에서 약속하는 것이고, 자자는 장기간 한 곳에서 머물며 수행하는 안거(安居) 기간의 마지막 날에 서로에게 잘못을 지적해줄 것을 청하고 이에 따라 참회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참회는 잘못을 용서받는, 사(赦)함 받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아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가기 위한, 선업(善業)을 쌓아가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우리는 참된 용기라고 합니다. 이에 반해 자신의 잘못에 대해 변명과 은폐를 일삼는 사람을 후안무치(厚顔無恥) 또는 파렴치하다 합니다.

우리는 정치인들로부터 국민의 심부름꾼, 국민의 종이 되겠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습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변명과 은폐를 일삼는 사람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리가 없고 또 실제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들도 상호 신뢰와 진정한 소통은 자신에 대한 참회가 출발점이라는 것을 마음속에 깊이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영담 조계종 총무부장·불교방송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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