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단상] 남북 접경지역 주민 고통사

화장실과 축사를 지을 때도 군과 협의를 해야 하는 곳이 있다. 먼 옛날 얘기도 아니고 일부 후진국들의 얘기도 아니다. 2012년을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접경지역 주민들이 처한 현실이다.

파주시를 비롯해 연천·김포 등 경기도 3곳과 인천시 강화·옹진, 강원도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등 10개 시·군이 바로 그곳이다.

지금도 접경지역 총 면적의 63%가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이 중 철원은 100%, 연천과 파주는 각각 98%와 91%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어 주민 피해가 심각한 실정이다.

사실 휴전선과 인접한 접경지역에 대한 규제와 차별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들 지역은 지난 60여 년 간 국가안보를 위해 지역발전은 뒷전으로 밀린 채 생계는 물론 사회·경제적 불이익을 받아왔다.

열악한 지역 환경은 그대로 주민불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10개 접경지역 중 8개 시·군은 산부인과조차 없어 아이를 낳으려면 다른 지역으로 1시간 이상을 가야 한다. 여기에 북한의 도발위협과 낙후된 교통시설 등도 지역 주민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그렇다고 자체적으로 지역발전을 도모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형편이다. 이들 지역의 재정자립도 또한 전국 최하위권 수준인 10∼20%로 전국 평균 52.3%를 훨씬 밑돌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부의 지원도 지역주민들의 불만을 따라잡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아직은 대규모 투자나 개발보다는 농로 포장이나 마을회관 건립 등 주민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해 주는 정도의 생색내기식 지원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접경지역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방식부터 바꿔야 할 때이다.

다행히 지난해 정부와 여·야 의원들의 노력으로 ‘접경지역 발전 종합계획’과 ‘접경지역 지원특별법’이 만들어져 새로운 가능성을 바라보게 됐다.

하지만 정작 지역주민들은 1년이 다 돼가도록 아직까지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당초 20년 간 매년 1조 원씩 투입키로 했던 접경지역 발전 종합계획은 지난해와 올해 국비지원액이 각각 1천530억 원과 3천114억 원에 그쳤다. 정부에서 급하게 계획만 수립했을 뿐 개발 사업에 필요한 세부 재원확보 규정조차 정하지 않아 발생된 문제였다.

접경지역 특별법도 현실과는 거리가 먼 특별법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특별법임에도 국토기본법·수도권 정비계획법·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등 3개 법률보다 우선 적용하지 못하도록 단서조항을 두고 있어서다.

접경지역 주민들이 주장하는 것은 국가안보까지 포기해가며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소외됐던 지역에 관심을 갖고 합리적인 수준으로 규제를 풀고 지원해 달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접경지역지원 특별법이 당초 취지대로 접경지역 발전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를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또 중앙정부 차원에서 낙후되고 소외된 접경지역 주민들의 삶이 질 개선과 이들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책도 고심해야 한다.

60여 년의 세월을 국가를 믿고 따라준 지역 주민들에게 언제까지 희생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접경지역의 가치는 주민 생활개선과 함께 남북교류 활성화와 통일시대를 대비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은 도둑처럼 온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상황을 대비해서라도 미리부터 접경지역에 대한 투자를 조금씩 해 나갈 필요가 있다. 통일을 맞았을 때의 재정적 부담을 미리부터 조금씩 분산시킴으로써 이른바 ‘통일 쇼크’를 줄이면서 연착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된다’는 말이 있다. 통일한국을 생각하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이 말은 예외가 아닐 것이다.

이인재 파주시장(접경지역 시장·군수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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