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오원춘과 김길태 그리고 사형제

이용성 사회부장 ylees@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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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오원춘에게 사형을 구형합니다”

6월 첫날 수원지법에서 열린 희대의 살인마 오원춘의 결심공판 내용이다.

물론 이 사건을 아는 모든 이들이 예상했던 당연한 결과여서 그런지 아주 놀랄만한 구형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검찰이 재판부에 요구한 “전자장치 부착 30년”이라고 덧붙인 내용은 다소 엉뚱함 그 자체였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은 오원춘의 범죄행위에 엄중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며 사형을 요구한 검찰이 앞으로 30년동안 성범죄 예방차원에서 전자장치를 부착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앞뒤가 안 맞는 사형과 관련된 법정의 모습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2년전인 지난 2010년 6월 오로지 성적욕구 충족을 위해 여중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김길태에게 내려진 구형 및 선고내용과 일맥상통한다. ‘모르쇠’로 일관하며 항소심까지 간 끝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김길태의 1심 선고는 다음과 같다.

부산지법은 강간살인죄로 기소된 김길태에 대해 사형을 선고하고 출소하더라도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하도록 명령한바 있다.

한마디로 실질적인 사형 집행이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결정의 뒷배경에는 DJ정부인 1997년 이후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현재 60여명의 사형수가 존재한데서 비롯됐다.

마지막 사형집행은 1996년 12월30일로 당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인원은 23명에 달했으며 이후 10년 이상 사형집행이 중단, 국제 엠네스티 등은 우리나라에 대해 사형 폐지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사실상 실제 사형집행은 없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자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지른 흉악범에 대한 재판과정이 진행될 때마다 매번 사형제 존폐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어왔다.

김길태 재판 때는 정부가 사형집행 검토작업에 들어가면서 정치권이 여야를 막론하고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섰지만 의견이 분분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또 최근 오원춘 사형구형 소식을 접한 네티즌을 중심으로 인터넷을 통해 찬반논쟁이 또다시 점화되고 있다.

찬성자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 고귀한 생명을 잔혹하게 빼앗은 흉악범에게는 생명권을 보장할 필요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가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정의를 올바르게 잡고 범죄예방 효과를 위해서는 사형집행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형당할 것이 너무 두려워 범죄를 저지르는데 주저한다는 것이다.

반면 사형제도 폐지론자들은 사형이 범죄예방효과가 없고 강력범죄를 유발할 우려가 있는데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타인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반된 입장속에 키를 쥐고 있는 정치권은 여론의 눈치를 보며 실제 사형을 집행하지도 않으면서 사형제를 유지해오고 있다. 워낙 논란이 많은 사안이다 보니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순점을 가진 사형제를 지속할바에야 이젠 가부(可否)를 신속히 결정해야 한다. 사형을 선고하면서 몇십년의 전자장치 부착이라는 모순으로 얼룩진 판결내용으로 국민을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된다.

그동안 집행하지 않은 사형수들을 한데 모아 사형을 집행하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사형제를 폐지시키든지 재개여부를 결정하든지 끊임없이 이어진 논란이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이다.

이 용 성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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