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은 한 해 출생 인구가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선 해다. 출생 인구 수의 정점을 찍은 이 해를 전후한 1955년부터 1963년 사이 인구를 흔히 베이비부머라 칭한다.
88만원 세대와 X세대 청년들의 부모쯤 되는 이들 세대는 전후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 구현에 앞장서며 지난(至難)한 현대사와 궤를 함께 해왔고, 이제 은퇴 혹은 퇴직이라는 썰물 앞에 섰다. 이와 관련해 요즘 가장 많이 회자되는 논의는 이들의 퇴직 혹은 은퇴 이후 삶, 특히 생계와 일자리 문제의 심각성에 관한 것이다. 퇴직 이후 한달에 필요한 생활비가 얼마고 얼마가 부족한가 혹은 사업 경험이 많지 않은 이들이 자영업쪽으로 이동하면서 서비스업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거나 과도한 경쟁으로 폐업이 더 늘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줄을 잇고 있다.
물론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절실하다. 그러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이들이 누리는 혹은 누려야할 여가에 대한 논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010년 내놓은 국민여가활동 조사 결과를 보면 베이비부머 세대 은퇴자들의 여가활동 상위 5개 유형 가운데 1위가 TV시청, 2위와 3위가 각각 낮잠과 등산이었고 모임과 산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퇴직 후 창업이나 재취업으로 근로를 이어가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의 여가, 더 정확히 말해 이들의 보다 가치있는 여가에 대한 논의는 생계 문제에 가려 여전히 더디다. 일터에서 쌓은 전문성과 경험을 지닌 이들이 더 오래 사회와 소통하며 가치있는 여가를 갖도록 함은 우리 사회 전체의 경쟁력과 경제적 가치를 함의하기에 중요한 문제다. 무엇보다 은퇴로 인한 사회와의 급작스런 단절은 이들에게는 경제적 어려움 이상의 스트레스가 될 수 있기에 가치있는 ‘사회소통적’ 여가의 발굴과 정착은 선행돼야할 과제다.
지난 해부터 미국에서도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미국 조사연구기관인 퓨리서치센터는 앞으로 19년 동안 매일 만명꼴로 은퇴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미국도 퇴직자 인플레이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의미로 미국 역시 우리와 비슷하게 사회보장비용 급증에 따른 부작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지만 퇴직 이후 은퇴자들의 생활과 여가에 대한 인식과 인프라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 청년들을 파견해 다양한 분야에서 봉사를 펼치도록 하는 ‘평화봉사단’처럼 미국에서는 이미 ‘경험 봉사단’ 혹은 ‘시니어봉사단’ 형태로 대도시 공립학교의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교육 봉사와 멘토링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단순히 학업 지도 뿐 아니라 자신들의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인성 교육까지 나서 호응을 얻고 있다. 4천만명을 웃도는 회원을 가진 미국은퇴자협회 (AARP)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조직으로 손꼽힌다.
50살 이상 은퇴자 등이 가입하는 이 협회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가 여가를 위한 각종 정보와 서비스 제공이다. 이런 인프라 덕분에 미국에서는 은퇴자를 포함해 해마다 9천만명이 자원봉사로 일하고 있으며 이렇게 무보수로 봉사하는 시간이 200억 시간에 이른다고 한다. 사회에 기여한 정도를 돈으로 환산하면 2천250억 달러(한화 약 230조원)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퇴직자들은 병원이나 학교, 노숙자 숙소와 박물관, 공원과 거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봉사하며 사회 유지와 경제 발전에 다시 힘을 보탠다는 강한 자긍심을 갖게돼 우울증이나 박탈감 같은 심리적 장애에서 자유로워지고 있다.
은퇴후 20년 동안의 여가시간이 대략 8만시간에 이른다고 한다. 이 긴 시간을 ‘봉사’를 통해 사회적 재화를 재창출하고 자족감을 찾아가도록 도울 방안이 모색돼야한다.
정재환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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