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멘붕과 힐링

이용성 사회부장 ylees@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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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사용하는 ‘멘붕’은 ‘멘탈(mental) 붕괴’의 약어로서 정신적인 충격을 의미하는 은어의 일종이다.

당초 일부 게이머들 사이에서 게임이 잘 안될 때 쓰기 시작한 단순한 말이었다.

또 굉장히 웃기거나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 등으로 인한 가벼운 심리적 놀람의 상태를 재밌게 표현하고자 할 때 이용돼 왔다.

그런데 점점 갈수록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다소 무거운 분위기에 쓰여지면서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유행어가 돼버렸다.

특히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 현대인들의 패닉상태를 멘붕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 각종 스트레스와 혼란으로 가득찬 사회현실과 맞물려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사실 언론에 접하는 여러 뉴스와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멘붕’에 쉽게 빠져들고 있다.

우선 시신을 무차별적으로 훼손한 오원춘 사건을 비롯 안양의 세아들 살인사건, 시흥 노부부 토막살인 등 공포괴기 영화에서나 가능한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모습들은 극한 충격 속에 멘붕을 떠올릴수 밖에 없다.

이렇듯 쉽사리 멘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건, 사고뿐이 아니다.

당리당략(黨利黨略)에 휩싸여 연일 죽기살기식 공격을 퍼붓고 있는 정치권의 정쟁과 더불어 돈봉투 등 한건주의식 폭로전들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지저분하게 하며 허탈감에 빠뜨리게 하고 있다.

또 지속되는 부동산 하락과 심각한 내수위축으로 인한 경제불황, 청년실업에 의한 취업난 가중, 쏟아지는 베이비부머들의 은퇴문제 등 경제계의 암울한 소식들도 ‘멘붕주의’에 한몫을 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근래 실시한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결과 멘탈붕괴의 주요 사유로 소득감소(32.7%)를 가장 많이 꼽았고, 부채증가(17.6%), 불안정한 일자리(14.3%), 과도한 교육비지출(13.5%), 자산가치 하락(11.8%), 전·월세 등 주거비 부담(4.9%) 순으로 응답, 경제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대단한 지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멘붕은 사회전반적인 분위기와 맞물린 불황의 그늘이 짙어지면서 그 정도차가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집단 우울증이라고 할 만큼 우리 사회는 신음하고 있다.

이처럼 가벼운 생활상의 은어에서 출발해 극심한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표현하고 있는 멘붕의 대안으로 사회학자들은‘힐링(healing)’을 이야기하고 있다.

멘붕과 힐링(치유)은 원인과 결과의 필연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힐링 역시 몸이나 마음을 치유한다는 간단한 단어로 시작해 올해 상반기 키워드로 등장한 만큼 가히 멘붕과 대적할만 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나 인간관계형성, 사회구성원으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정신적 부담을 안고 빠져버린 멘붕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힐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를 풀 곳이 마땅치 않아 술에 의존하거나 빗나간 행동, 속으로만 끙끙 앓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대화와 여가활동이 멘붕시대를 이겨내는 힘이 될 수 있다.

힐링은 자연의 한 과정으로 누구에게나 가지고 있는 천부적인 힘인 만큼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는데 버팀목이 될 수 있다.

한 연구가는 “치유의 진정한 의미는 한 개인의 삶에서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것”이라고 했다.

멘붕의 시대, 나만의 힐링을 찾아 나서야 할 때다.

이용성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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