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단상] 안양FC여, K리그를 평정하라!

‘안양이 1990년 이후 10년 만에 정규리그 정상에 올랐다. 6월 14일 1위에 오른 이후 단 한 차례도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고 9월 30일 수원을 상대로 역전승하며 1위를 확정했다. 사상 최고의 이적료를 주고 데려온 유고 출신 용병 드라간, 시즌 MVP에 오른 최용수, 도움 1위 안드레 등 주전들의 고른 활약이 1위의 원동력이었다. 안양은 10년 만에 부활한 2군리그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두 배의 기쁨을 만끽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사이트 ‘K리그 역사’에 또렷이 기록되어 있는, 지난 2000년 ‘축구안양’의 역사입니다.

안양이 그날의 감동을 재현할 채비를 갖췄습니다. 지난 10월 안양FC 창단 및 지원조례가 시의회를 통과함으로써 잃어버렸던 프로축구단이 부활합니다. 지난 2004년 안양LG치타스가 연고지를 서울로 옮긴지 9년만의 낭보(朗報)입니다. 시장으로서 반드시 프로축구단을 만들겠다는 시민과의 약속을 지키게 되어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창단을 위한 행보도 경쾌합니다.

시는 이미 지난 달 23일 창립이사회를 가졌고 이달 중 법인과 사무국을 설립합니다. 감독과 선수단을 구성하는 대로 내년1월 창단식을 갖고 3월부터 경기를 갖습니다. 시는 2017년까지 5년간 모두 45억원을 지원하고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신인 우선지명권과 우수선수 자유선발권, 토토수익금 지원 등도 받게 됩니다. 돌아보면 숨 가쁘게 달려온 2년여, 시는 축구단 창단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시민축구단 재정운영 방안 연구용역을 시작으로 브라질 소로카바시 프로축구단 벤치마킹과 시의회 간담회, 시민공청회 등을 가졌습니다. 축구협회와의 의견조율, 창단지지 서명부 제출, 시 최초 국가대표 A매치 경기 유치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춰 왔습니다. 이렇듯 간단치 않은 과정을 추진하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도 축구명문 도시로서의 자존심을 되찾고 안양축구의 부흥을 꾀하는 것이었습니다.

모 언론사는 축구안양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양의 축구역사는 아주 깊다. 1930년대 안양-과천 정기전으로부터 40년대 말 안양초교 축구부와 60년대 안양중학교, 70년대 안양공고로 맥을 이어 2000년대 안양FC로 이어졌다. 60년대 전국에 3개밖에 없던 잔디구장 중 하나였던 금성방직 축구장. 이곳에서 열리는 축구시합을 자주 접하면서 시민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또 축구인들이 안양을 자주 찾게 되면서 축구도시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축구명문 안양공고가 전국대회를 30여 차례나 우승하면서 70~80년대 안양이 본격적인 축구도시로 발돋움하고 2000년대 초반까지 성장하게 된 밑거름이 되었다’.

이같은 내용을 축구계 원로 분들의 생생한 기억과 증언으로 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 국가대표 조윤환, 정해원, 이영표 등을 배출했고 명장 조광래 안양FC감독이 프로축구의 화려한 꽃을 피웠습니다. 어게인 안양! 마침내 그 역사와 전통의 부흥이 눈앞에 있습니다. 부가적인 사회경제적 가치 또한 대단합니다. 스포츠를 통한 시민,청소년의 건전한 여가문화, 지역,계층간 화합, 애향심 등이 고취되고 관중 증가, 상권 활성화 등 지역경제가 발전할 것입니다. 우리시 이미지 또한 대외적으로 크게 높아질 것입니다.

카운트 다운은 시작됐습니다. 내년 3월 우리시를 비롯해 충주험멜, 고양HFC 참가가 확정됐고, 부천FC는 조건부, 연고지 협의중인 상무와 경찰청 그리고 내셔널리그의 울산미포조선과 올 시즌 K리그 강등팀 이렇게 8팀이 그라운드를 누빌 전망입니다. ‘안양FC 재창단 첫해 우승! 안양, K리그 승강제로 1부 리그 승격’. 권토중래 10년 공백이 참으로 길었나 봅니다. 벌써부터 우승을 꿈꿔 봅니다. 과거부터 열정적인 서포터스로 유명한 안양시. 62만 시민과 축구팬들의 열광이 모아져 안양종합운동장이 활화산으로 용솟음치길 기대할 것입니다.

최대호 안양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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