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라도 수업시간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남성인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남성 우월주의적인 언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런 공부를 하는 신학생들이 서로 친구가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늘 자기들끼리만 몰려 다녔습니다.
백인들은 백인들끼리, 흑인들은 흑인들끼리, 히스패닉은 히스패닉까리, 한국 학생들도 한국 학생들끼리만 어울렸습니다. 그러다가 자기들이 조금 손해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인종차별 아니냐고 따져 묻기 일쑤였습니다. 그때 든 생각이 아무리 해방을 이야기하고, 자유를 이야기하고, 상대방을 위하는 것 같아도 정말 그 안에 상대방을 향한 사랑이 없다면 행동의 변화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찾아온 한 사람이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장면이 있습니다. 세상에 많은 가르침들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합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십시오. 이것보다 더 큰 계명은 없습니다” 이 두 가지 대답에서 공통되는 것은 “사랑하라”입니다. 특별히 이웃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는데, 이웃을 사랑하되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혹시 우리 중에 누가 오늘 발에 걸려 넘어졌다고, 톱을 가져와서 발을 자르라고 하겠습니까? 혹 우리가 음식을 먹다 이가 혀를 물었다고, 이를 뽑으라고 하겠습니까? 혹 우리가 망치질을 하다 오른손이 잘못하여 왼손을 찧었다고 오른 손을 비난하기 보다는 다친 왼손을 입에 가져가 불어주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지체입니다. 아픔을 가져다 줬지만 원망하고 비난하기 보다는 감싸는 것이 지체입니다. 이것이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투나잇 쇼’에서 Jack Parr라는 사람이 사회자였을 때, 호세 멜리스라는 피아니스트가 음악 책임자였습니다. 그 토크 쇼에서는 종종 깜짝 쇼가 벌어졌는데, 하루는 Jack Parr가 녹화를 하다 말고 갑자기 피아노 쪽으로 가서 마구잡이로 건반을 두드려대며 불협화음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는 호세 멜리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아요, 호세. 당신이 이 피아노로 뭘 할 수 있는지 한번 보죠.” 그러자 호세는 Jack Parr가 두드렸던 건반을 정확히 짚어내며, 그 마구잡이 음에 아름답고 조화로운 음악 반주를 섞어 넣었습니다. 불협화음을 아름다운 멜로디로 바꾼 것이죠.
이 세상을 아름다운 멜로디로 가득 채우는 방법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럼 도저히 들을 수 없었던 불협화음이 아름다운 멜로디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사랑하십시오! 그 사람이 마치 나인 것처럼! 이 세상이 아름다운 멜로디로 가득 채워지도록!
김 병 삼 분당 만나교회 주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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