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용서가 만들어내는 놀라운 기적

불이 났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밤늦게 교회에 돌아와 보니 연기 냄새와 함께 여기저기 물에 젖은 잿더미가 보였습니다.

다행스럽게 불이 외벽 창고에서 시작되었고 또 빨리 발견되어 교회 내부를 태우지는 않고 모두 꺼졌습니다. 하지만 화재로 인해 연기가 많이 나고 소방차가 출동한 탓에 가까이 사는 교인들과 교회 안에 있던 분들이 뛰쳐나와 한바탕 소통이 벌어졌습니다. 경찰에서 화재 사건을 조사하면서 이번 화재가 방화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누군가 와서 불을 질렀다는 겁니다.

CCTV를 확인해 본다고 하더니 다음날 전화가 왔습니다. 범인을 잡았다는 겁니다. CCTV에 방화장면이 그대로 찍혀 있는데 누군가 하고 봤더니 평소에 교회에 종종 들러 행패도 부리고 돈을 구걸하기도 하고 협박도 했던 노숙자분이었습니다.

교회에 불을 지른 그분을 보면서 장발장이 생각났습니다. 교회에 불을 지른 사람이긴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해 준다면 장발장처럼 새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의 몇몇 분들과도 상의했습니다. 그리고 용서해 주기로 결심하고 경찰서에 갔습니다. 그런데 담당 경찰관이 안 된다는 겁니다.

불을 지른 죄에 대해서는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이분의 경우 신원조회 결과 성범죄를 비롯한 여러 번의 전과 기록이 있고 그 외에도 절도를 비롯한 몇몇 사건들에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 용서한다고 해도 다른 누군가가 또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풀어줄 수 없다는 겁니다.

또한 교회에 불을 지르기 전에 몇번이나 찾아와서 불을 지르겠다고 위협을 했고, 교회의 여자 성도들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며 여러번 협박까지 했기 때문에 경찰 입장에서는 절대로 풀어줄 수 없다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용서를 통해 누군가가 변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건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러나 내가 용서했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용서는 옳은 것이지만, 용서가 또 하나의 악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용서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만일 용서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변화도, 기적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 제자들의 발을 직접 닦아 주십니다.

그 제자들 가운데에는 고작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버린 가롯 유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롯 유다가 자신을 배신한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의 발을 아무 말 없이 닦아 주십니다. 예수님은 사랑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나를 배신하고 죽이려고 하는 그 사람까지도 용서하고 품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용서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용서하고 사랑하면 적어도 용서와 사랑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기적을 기대할 수는 있습니다. 당장은 용서가 옳은지, 용서가 옳지 않은지 답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장발장을 꿈꿔야 합니다. 용서가 만들어내는 기적을 꿈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장발장이 수도원에서 부른 노래 중 유독 눈에 띄는 가사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이 예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용서를 받은 장발장은 결국 많은 사람들을 용서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 용서로 인해 자신은 끊임없이 많은 어려움을 당해야 하지만 그는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용서가 만들어내는 기적을 기대하며 누군가를 용서하는 놀라운 사랑이 이 땅에 가득 넘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김 병 삼 분당 만나교회 주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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