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조그마한 휴대전화 조립공장에서 온종일 고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어릴 적부터 바랐던 공무원 꿈은 저버리지 않았다. 늦은밤 퇴근하면서도 그 흔한 택시 대신 버스를 타며 절약한 돈으로 고향에 계신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조카에겐 용돈을 보내 주던 심성 착한 그녀였다.
이런 곱디고운 그녀가 세상을 등진지 1년이 다 돼간다.
2012년 4월1일 밤 10시32분.
남들은 평온한 주말 밤을 보내던 그 시각에 그녀는 희대의 살인마 오원춘에게 강제로 끌려가 온몸이 짓밟히고 356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진 채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
그녀를 보낸 이후 가족들의 삶과 행복은 처참하게 도륙되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오고 있다. 부모 언니 동생 할 것 없이 1년이 다 되도록 수면제 없이는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하는 고통의 나날 속에 고행의 삶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어디 이뿐 만이겠는가.
얼마 전 살인마 오원춘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되면서 그녀의 가족들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피가 거꾸로 쏟아지는 듯한 고통을 또다시 느꼈다고 한다.
이렇듯 사랑의 힘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던 한 가족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오원춘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다 됐건만 각종 강력사건에 휩싸인 우리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은 것 같다.
오원춘 사건 이후 제주도 올레길에서 토막살인사건, 나주 초등학교 성폭행 등 각종 성 관련 강력범죄가 연이어 터지면서 정부와 경찰에서는 수많은 대책을 쏟아냈다. 우선 112신고센터 강화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는가 하면 위급상황시 경찰이 가택 내 강제진입이 가능토록 내부지침을 마련하기도 했다.
또 성폭력 우범자 소재파악과 특별점검을 비롯해 취약시간 검문강화, 과학수사 역량 강화 등 여성을 위한 치안대책을 세상이 떠들썩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발표됐다.
하지만 이런 대책들은 현실성이 떨어지면서 국민의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대책 자체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인데다 그마저 실효성에 의문이 가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으로 치안상황은 크게 나아진게 없을뿐더러 성 관련 강력범죄는 매번 비슷한 이유로 되풀이 되고 있다.
오원춘 사건이 발생한 지난 4월 이후 현재까지 강간, 추행 등 성 관련 범죄가 매달 도내에서만 300~400건에 이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같은 현실에는 소를 잃었다면 외양간을 다시 짓든지 철저히 고쳐야 하는데, 무작정 도둑만 탓하고 외양간 겉모습만 화려하게 하는데 원론적인 원인이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 성범죄의 희생양이 돼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수많은 슬픈 이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여성들이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이런 시점에서 우린 원론적인 반성을 할 필요가 있다. 산업사회의 급속한 발전으로 공동체에 대한 인식이 거의 사라졌다. 어떤 일이든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인식이 범죄를 더욱 양산시킨다. 지자체나 정부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도시의 개발에만 몰두하고 도시의 안전성과 공동체의 함양은 외면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우리 사회의 지향점이라는 점에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우선 눈에 보이는 대책이 아니라 도시를 비롯한 소지역 내에서의 안전도시 계획을 세워야 한다. CCTV 설치 등 다양한 대책과 함께 공동체 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사람중심의 구체적 프로그램과 활동이 필요하다.
무시무시한 공포영화에서 나올만한 오원춘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여성의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또 다른 피해자가 나와 내 가족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여야 할 시점이다.
이 용 성 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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