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모래시계’ 누가 ‘거장’ 김종학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뉴스분석] 척박한 제작환경이 빚은 비극…

온 국민을 TV앞에 모이게 했던 한국드라마의 ‘거장’이 8.26㎡ 규모로 간이침대가 전부인 고시텔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 김종학 프로듀서(62)가 23일 분당의 한 고시텔에서 숨을 거뒀다. 김씨는 고시텔에 혼자 투숙해 번개탄을 피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등을 연출한 스타PD

치솟는 출연료ㆍ제작비 등 현실의 벽에 무너져

최근 드라마 제작 실패로 배임등 혐의 조사 받아

김씨는 지난 21일 오후 8시께 고시텔을 찾아와 이틀간 머물겠다며 직원에게 3만원을 지불했으며, 김씨가 빌린 방은 다른 방과 마찬가지로 8.26㎡ 규모의 간이침대와 욕실이 딸려 있는 5층 복도 가장자리 끝에 위치한 방이었다.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짧막한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뜬 김씨는 100억원의 거액을 투입해 제작했던 드라마 ‘신의’의 실패로 인해 최근 배임 등의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으면서 심적 부담 등으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1981년 범죄추리극 ‘수사반장’으로 프로듀서에 입문한 김씨는 ‘다산 정약용’, ‘고산자 김정호’, ‘조선총독부’, ‘동토의 왕국’, ‘인간극장’ 등 다수의 작품을 연출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우리 민족의 아픔을 담은 ‘여명의 눈동자(1991년)’와 격동의 현대사와 5·18 광주민주항쟁을 최초로 드라마한 ‘모래시계(1995년)’는 서로가 바쁜 가족들을 TV앞에 모이게 하는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하는 불후의 명작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후 김씨는 1998년 김종학 프로덕션을 설립, 제작자로 나섰다. ‘아름다운 날들’, ‘풀하우스’, ‘해신’, ‘하얀거탑’, ‘베토벤 바이러스’ 등은 제작자로서의 성공 반열에 올려 놓았다.

그러나 김씨는 드라마 콘텐츠의 산업화에 도전하면서 생의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방송사에서 제작비를 받아 드라마를 만드는 하청구조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치솟는 배우 출연료와 제작비 앞에선 적자구조를 탈피하지 못했다.

한국 드라마의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온 김씨는 결국 현실의 벽앞에 한계를 느껴 ‘드라마 인생’ 30여년 만에 인생의 끈을 스스로 내려놓아 버렸다.

한편 김씨는 1984년 한국방송대상 연출상, 한국방송대상 작품상, 백상예술대상 연출상, 1992년 한국방송대상 작품상, 백상예술대상 연출상, 1995년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연출상, 2003년 백상예술대상 연출상, PD연합회 대상 작품상, 2006년 경희언론인 문화상, 2007년 MBC연기대상 공로상 등을 수상했으며 2010년 12월에 열린 제2회 서울문화예술대상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성남=문민석기자 sugm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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