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는 ‘우박 폭탄’ 농경지 쑥대밭
이천 일대 30여분간 쏟아져
복숭아ㆍ수박ㆍ고추 등 큰 피해
재해보험 가입 안해 보상 막막
농민들 “1년 농사 망쳐 암담”
“복숭아 농사가 모든 생계 수단이었는데 올해는 고사하고 내년에도 농사를 장담할 수 없게 됐습니다.”
11일 오전 10시께 이천시 율면 산양2리 마을 어귀에 위치한 9천여㎡ 규모의 복숭아 농장.
마을 이장직을 맡으며 틈틈히 농장을 돌봐 온 원종문씨(63)는 한숨만 내 쉰다. 늦어도 두 달 후면 천중도와 황도 등 중만생종 복숭아 수확을 기대했는데 이제는 ‘망쳤구나’ 하는 생각에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같은 시각, 석산리 4천여㎡ 면적에서 담배 농사를 짓고 있는 서상천씨(65). 그의 표정도 별반 다를게 없었다. 빠르면 이달 말부터 수확에 나서 3.3㎡당 1만원대의 소득을 기대했지만 이제는 단 한 푼도 건질 수 없다는 생각에 근심뿐이다.
인근에서 하우스 수박 농사를 짓고 있는 정동화씨(67) 농장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번주 토요일부터 내다 팔 생각에 수박을 애지중지 돌봐왔는데 우박이 하우스를 뚫고 들어 온 바람에 물수박으로 변해 버려야 할 형편이다.
이천시 율면 6개리 13개 마을 과수원과 논·밭이 잠시 휩쓸고 간 우박(본보 11일자 7면사진)으로 난장판으로 변했다.
전날 오후 5시45분께부터 30여분 동안 쏱아진 우박은 많게는 20㎝ 가량 쌓이면서 삽시간에 농경지를 폐허로 만들었다. 손쓸 겨를도 없이 하우스 천장을 뚫고 들어 온 우박으로 엽채류는 상품 가치를 잃어 버렸다.
알알이 영글어 가던 복숭아, 포도, 옥수수, 고추, 참께 등은 열매나 잎이 떨어져 나가 더 이상 성장을 바라 볼수 없게 됐다. 특히 고수확 율면 특산품으로 기대를 모았던 잎담배도 잎이 떨어져 나가 벌거숭이로 변하면서 이제는 한 푼도 건질 수 없게 됐다.
벼농사도 예외는 아니다. 따뜻한 기온에 편승, 무럭무럭 자라야 할 벼는 우박 냉해 피해가 우려되면서 정상적 생육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대부분 농작물 재해보험도 가입하지 않아 보상도 막막한 실정이다.
율면농협 박병건 조합장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삽시간에 쏱아진 우박은 처음 봤다”면서 “이지역 주민들의 생계수단은 100% 농사였는데 올 한해 농사를 망쳐 암담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고양과 파주 등에서도 강한 회오리 바람(토네이도)이 발생해 비닐하우스가 무너지고 정전이 발생하는 등 도내 곳곳에서 이상 기후로 인한 피해가 잇따랐다.
지난 10일 오후 7시50분께 고양시 일산 서구 구산동 1379 장월마을 인근 장월 목장에 갑자기 강한 회오리 바람이 몰아쳐 비닐하우스 21곳이 피해를 입었다. 이곳을 지나던 김모씨(80)가 바람에 날아온 파이프에 맞아 다쳤다.
특히 이날 돌풍이 불면서 바람에 날린 각종 비닐과 천이 전선을 덮쳐 정전이 발생하기도 했다.
고양•이천=유제원•김동수기자 dski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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