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세계를 품다] 1. 프롤로그
‘관방(關防) 문화유산’, ‘산성도시’, ‘역사자원의 보고’….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쌓은 주장성(晝長城)의 옛터를 활용해 1624년(인조 2)에 축성한 남한산성은 현재까지 참 다양하게 불리어지고, 해석되고 있다. 1626년 공사를 완료한 남한산성처럼 우리 역사와 오랜 기간 함께 한 성곽도 드물다. 2014년 남한산성 이름 앞에 ‘세계유산’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이 붙게 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2일 한국시간 오후 3시 35분 카타르 도하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38차 회의에서 한국이 신청한 ‘남한산성’에 대한 세계문화유산(World Cultural Heritage) 등재를 확정했다. 이로써 남한산성은 한국의 11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남한산성의 세계유산 등재를 맞아 본보는 남한산성의 역사와 가치를 15차례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 주
남한산성은 오랜 세월만큼이나 아픔이 깊은 곳이다. 378년 전 조선 왕조가 청의 침략에 무참하게 짓밟힌 전쟁, 병자호란(1636년)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실제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중 인조가 한양 도성을 버리고 피신해 장기 농성한 왕궁이다.
이러한 뼈아픈 역사를 작가 김훈은 소설 ‘남한산성’을 통해 인조가 남한산성에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의 역사적 사실을 작가 특유의 냉혹하고 뜨거운 말로 치욕스런 역사의 한단면을 보여줬다.
성 안의 무기력한 인조 앞에서 벌어진 주전파와 주화파의 치명적인 다툼 그리고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 앞에서 고통 받는 민초들의 삶. 이는 감당할 수 없는 역사이고, 씻을 수 없는 역사였다.
이제는 남한산성을 달리 봐야 한다. 남한산성이 ‘세계유산’이 됐다. 남한산성은 세계유산적 가치가 충분하다. 아니 넘친다.
■ 연건 320만명 방문하는 남한산성 ‘정확하게’ㆍ ‘제대로’ 알아야
연간 320만명이 탐방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남한산성은 모르는 이가 없다. 허나, ‘정확하게’,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다. 남한산성의 속속들이 똑똑하게 밝히는 것이 이번 기획의도 중 하나이다. 그래서 간략하게 남한산성을 소개한다.
사적 제57호 남한산성은 해발 500m가 넘는 험준한 자연지형을 따라 둘레 12㎢가 넘는 성벽을 구축해 많은 병력으로도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지리적 여건을 구비하고 있다. 광주시가 22.920㎢(63%)를 차지하며 하남시 8.818㎢(24%), 성남시가 4.709㎢(13%)를 차지한다.
남한산성 내에는 성곽과 행궁 외에도 수어장대, 연무관, 숭열전, 청량당, 현절사, 침괘정 등 6개의 경기도 지정문화재가 있으며 망월사지와 개원사지 등 경기도 기념물도 2개가 있다.
또한 남한산성은 내부가 넓고 평탄하며, 80여 군데가 넘는 우물과 45개의 연못을 있을 정도로 수원이 풍부해 비축된 군량미만 충분하다면 수만 명의 병력도 수용이 가능할 정도다.
구조적으로 본성 외에 봉암성, 한봉성 등 2개의 외성을 갖추고 있으며, 남쪽에는 두 개의 돈대가 있다. 본성에는 5개의 옹성이 있으며 20개의 포루를 설치해 화포공격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성벽에는 4대문 외에 16개의 암문이 있으며 성벽 위에는 1천940여 개의 타로 구성된 여장이 구비되고 각 타에는 원총안과 근총안이 설치돼 있다. 성벽 안쪽에는 125개에 달하는 군포가 구축돼 있다. 군포와 군포 사이에는 90여 군데의 소금을 묻어둔 매염터와 숯을 묻어둔 매탄터가 있었다.
남한산성 본성은 신라 주장성의 성돌을 활용해 구축됐다. 외성은 본성과 시차를 두고 구축함으로써 각 시기의 성을 쌓은 기법을 특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산성을 쌓은 기법의 교과서와 같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남한산성은 우리나라 성곽 발달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사실을 종합해 보면 남한산성은 오래 시대에 걸쳐 한강유역을 포함한 한반도 중심부 방어의 전략적 거점이자, 천혜의 요새 그리고 조선 최대의 산악 군사ㆍ행정도시로서의 경기도는 물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방 문화유산이다.
또 곳곳에 산재한 200여 개의 문화재와 아름다운 자연생태환경, 그리고 주민의 삶과 문화가 투영된 무형문화는 남한산성을 ‘역사자원의 보고’라 불리우게 하는 근거가 된다.
■ 남한산성의 세계유산적 가치…‘성곽발달사의 보고’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 6.15~25)가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고 있는 가운데 현지 시각 6.22(일) 오전 우리나라가 등재 신청한 ‘남한산성(Namhansanseong)‘을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키로 결정했다.
이번 등재 결정 과정에서 세계유산위원회 및 ICOMOS(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산하 자문기구로서 문화유산의 등재 여부를 위원회에 권고)는 남한산성이 17세기 초 비상시 임시 수도로서 당시 일본과 중국의 산성 건축 기술을 반영하고 서양식 무기 도입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군사 방어 기술을 종합적으로 집대성하고 있음을 높이 평가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ㆍ자연ㆍ복합) 목록 등재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정부간위원회(21개국으로 구성)인 세계유산위원회(WHC)가 인정한 남한산성의 세계유산적 가치를 정리해보자.
첫째, 도시계획사적 가치로 남한산성은 보선시대 도성 이남을 방어하기 위해 모민정책을 통해 계획된 신도시였다. 또 종묘와 사직을 갖추고 있는 유일한 행궁이 있는 행정 군사도시로서 290년간 산성 내 마을이 현재까지도 지속, 유지된 독특한 산성도시다.
둘째, 남한산성은 ‘성곽발달사의 보고’라 할 수 있을 만큼 통일신라, 조선 인조, 숙종, 영조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별 축성기법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성곽으로서 성곽축성발달사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남한산성은 성광주조 변화의 보고로서 활ㆍ총ㆍ포로 이어지는 무기발전사에 따른 성곽구조 변화체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성곽이다. 또한 지형에 맞게 다양하게 응용된 옹성구조를 갖추고 있는 유일한 산성이다.
마지막으로 전통적, 사상적, 문화적 가치다. 산성 축성의 주역인 팔도사찰과 관련된 수륙재, 영산재 등의 불교의례, 숭렬전ㆍ현절사 제향과 관련한 유교의례, 천주교 유입과 관련한 순교성지, 도당굿과 장승제와 같은 민간신앙, 마을 전통고유행사인 대보름맞이 행사, 무형유산인 산성소주 제조, 최초 배달음식인 효종갱 등이 지속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2014년 남한산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됨에 따라 앞으로 남한산성의 치욕을 잊고, 남한산성의 아픔을 ‘남한산성이 살아 낸 삶의 이력’으로 이해하고, 보듬어야 한다. 왜냐 앞으로 남한산성이 가야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세계유산 등재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향후 남한산성의 중장기적 종합발전 계획 수립과 함께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보호·증진하는데 매진해야 하는 커다른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길고 긴 세월 우리의 역사와 함께 해온 남한산성. 이제는 경기도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아가는 또 다른 출발선에 서 있다. 이에 본지는 총 10회에 걸쳐 남한산성이 세계유산이라는 날개를 달고, 더 멋지게 세계로 비상할 수 있도록 남한산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한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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