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인천 감리서 터’ 방치… 광복 69주년 무색
18일 오전 10시께 인천시 중구 내동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 앞.
100여 년 전 특별한 공간이었음을 알리는 안내 팻말이 눈에 띈다. 이 아파트 일대는 일제강점기 일제에 항거한 백범 김구 선생이 두 차례 옥살이 한 ‘인천 감리서’ 터다.
백범은 지난 1896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분노해 일본인을 살해한 뒤 이곳에 갇혔지만, 2년8개월 후 탈옥했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팻말 주위로 각종 건자재와 생활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울창하게 자란 수풀은 아예 팻말 상당수를 가리고 있다.
주민 A씨(57·여)는 “백범 선생의 발자취를 느끼며 수십 년간 이 동네에 살았다”면서 “어느 순간 쓰레기로 가득해졌는데, 이럴 거면 팻말은 왜 세워 놨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구에 따르면 지난 1984년 시가 이곳에 감리서 터를 알리는 표지석을 세웠으며, 2010년 구는 표지석을 눈에 잘 띠는 아파트 공개공지(외부 화단)에 옮겨 펜스로 경계를 짓고, 안내판을 추가로 설치했다.
그러나 최근 아파트 상가에 대한 공사가 진행되며 일대가 각종 쓰레기로 가득한 채 방치되고 있어 주민은 물론 외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구는 이곳이 사유지로 관리 권한이 없다며 수수방관하고 있다. 중구청 일대에 개항기 일본 조계지 풍경을 재현하고자 수십억 원을 들여 건물 외벽을 꾸미고, 일부 사유지까지 매입해 일본풍 건물을 올린 것과는 사뭇 대조된다.
특히 전남 보성군은 인천서 탈옥한 백범이 은거한 곳을 ‘기념관’으로 꾸며 업적을 기리는 데 반해 중구는 일제 모습은 재현하면서, 일제에 대항한 투사의 발자취는 방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관이 직접 나서 감리서 터 관리는 물론, 기념사업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구 관계자는 “즉시 해당 공사업자와 사유지 소유주에게 적치물과 쓰레기 처리를 요구할 것”이라며 “문화재로 가치는 있지만, 지정 문화재도 아니고 방대한 사유지인 만큼 매입 등 보호할 방법이 없었다. 향후 보존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동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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