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없고, 늙고, 힘없어… 전쟁같은 하루하루

[현장&] 달동네 중 달동네 십정2지구 ‘겨울나기’

“연탄 쿠폰을 주면 뭐해, 달동네 꼭대기에는 10만 원은 더 줘야 배달해준다는데…”

10일 오후 1시께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 상정로 57번 길 일대.

김모씨(82)는 도둑이 들까 문을 꼭 걸어 잠근 채 하루 시간 대부분을 14인치 TV를 보며 보낸다.

가끔 동네 친구를 만나러 나가기도 했지만, 2년 전 빙판길에서 넘어진 후로는 외출 횟수가 부쩍 줄었다.

방 하나는 천장이 U자로 주저앉자 무너질까 겁나 사용 안 한 지 오래됐으며, 그나마 안방이 멀쩡한 게 다행일 따름이다.

연탄이 얼마 남지 않은 탓에 보일러는 최대한 아끼고, 온종일 이부자리를 편 채 전기장판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

김씨는 “자원봉사자도 높은 데까지는 오지 않는 건지 올해 연탄 자원봉사를 아직 못 받았다”며 “눈이 많이 오면 집이 무너질까 봐 잠을 못 잔다”고 말했다.

바로 길 건너에는 20층도 넘는 아파트가 서 있지만, 이곳에는 아파트 10층 높이는 될 법한 달동네가 마주하고 있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예정된 십정 2지구 중에서도 달동네 꼭대기에 자리 잡은 16통 일대 100여 가구가 가장 낙후지역으로 손꼽힌다.

많은 연탄 차량, 봉사 차량 등이 십정 2지구를 오가지만, 대부분 접근성이 좋은 달동네 초입에 발도장을 찍고 가기 일쑤다.

주민들 사이엔 어떤 집은 아직 연탄봉사를 구경도 못한 반면, 어떤 집은 연탄 봉사가 두세 차례 다녀가 1천 장도 넘게 쌓여 있다는 얘기가 돌 정도다.

16통 100여 가구 중 3분의 2가 빈집으로 방치돼 폭이 1m도 채 안 되는 계단과 골목은 눈이 와도 치울 사람이 없어 곳곳이 언 채 방치되고 있다.

통장이나 비교적 젊은 주민이 염화칼슘을 받아다 제설작업에 나서지만, 수백 개에 이르는 계단과 골목을 다 감당할 순 없는 노릇이다.

빈집이 늘어나면서 도둑이 싱크대, 전선, 보일러 할 것 없이 다 쓸어가거나 크고 작은 불이 나는 일도 늘어 남아 있는 주민의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

양학연 16통장은 “아무래도 집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관리가 되지 않아 더 빨리 무너지기 마련”이라며 “달동네 꼭대기에 사는 사람들은 돈 없고, 늙고, 힘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박용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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