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갇혀 수개월… 한국판 ‘터미널‘

고국 내전에 입영거부 아프리카인 ‘난민신청 사유 부족’ 입국 불허
햄버거·콜라로 끼니 ‘기나긴 소송’ 1년3개월만에 정식 난민심사 신청

‘한국판 터미널’이 인천국제공항에서도 벌어졌다.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터미널’은 고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귀국할 수도 미국에 입국할 수도 없게 된 한 동유럽인이 뉴욕 JFK공항 환승 구역에서 9개월 동안 지내며 벌어진 일을 그려낸 작품이다.

인천공항에서도 한 아프리카인이 수개월간 공항에 갇혀 오가지도 못한 채 출입국관리 당국을 상대로 외로운 소송을 벌이는 등 ‘한국판 터미널’이 그대로 재현됐다.

8일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에 따르면 아프리카인 A씨는 지난 2013년 11월 내전이 반복되는 고국에서 입영을 거부하고 도망치듯 떠나 인천공항에 도착, 출입국관리 당국에 난민 신청서를 냈다.

하지만 당국은 난민 신청 사유가 부족하다며 A씨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았고, 급기야 그를 태우고 온 항공사에 송환지시서를 보냈다.

A씨는 침구도 없는 송환 대기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대기실에서 나갈 수 있게 해달라는 인신보호 청구소송과 변호사를 접견할 수 있게 해달라는 헌법소송, 정식으로 난민 심사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행정소송 등 3건의 소송을 진행했다.

변호사를 선임한 A씨는 치킨버거와 콜라로 끼니를 때우며 소송을 벌인지 5개월여 만인 지난해 4월 인천지법은 대기실 수용이 법적 근거 없는 위법한 수용이라며 A씨 손을 들어줬다.

또 A씨가 환승 구역에서 나온 20여 일 뒤 송환 대기실 내 난민 신청자의 변호인 접견권을 허가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 가처분도 나왔다.

이어 지난 1월 말에는 서울고법으로부터 난민 심사조차 받지 못하게 한 당국의 처분은 위법이라는 판결을 얻어냈다. 결국 A씨는 인천공항에 도착한 지 무려 1년3개월여 만에 정식 난민 심사 신청했다.

A씨의 소송을 도운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세계 최고 공항의 이면을 드러낸 사건”이라며 “난민법 시행에 걸맞은 출입국관리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인엽 양광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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