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설립 절차 간소화 틈타 유령 법인·대포 통장 ‘활개’

16년만에 상법 전면 개정 서류요건 완화·온라인 접수

실질적인 심사 한계 노려

120억대 도박사이트 개설

범죄 악용 속출 대책 시급

법인 설립 요건 완화로 최근 유령 법인과 법인명의 대포 통장이 각종 범죄에 악용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4일 법무부와 인천지방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 2011년 법인 설립 절차 간소화 및 효율적인 법인 운영을 위해 16년 만에 상법이 전면 개정됐다. 일정 규모 미만의 법인은 온라인 접수가 가능해진 것은 물론 법인설립자본금의 기준이 폐지 등 법인을 설립하는 데 필요한 서류 요건이 완화됐고, 설립 절차 역시 간소화됐다.

그러나 이로 인해 유령법인 등이 생겨나며 각종 범행에 악용되고 있다. 최근 경찰 사이버범죄수사대에 적발된 120억 원대 불법 스포츠 도박사이트 운영 일당은 135개 유령법인과 200여 개 법인명의 대포통장을 만들어 돈세탁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유령 법인을 만든 뒤 법인당 많게는 10여 개의 대포통장을 만들어 범행에 이용했다.

특히 법인 설립은 실질적인 심사 없이 필요한 몇 가지 서류만으로도 설립이 가능하고, 금융기관에서도 위임장만으로도 대리인을 통해 통장 개설이 가능해 1개 법인당 여러 개의 통장을 만들어도 쉽게 의심받지 않는다는 점 등을 악용했다.

그동안 보이스피싱 등의 금융 범죄엔 불법으로 수집·매매된 개인 명의 대포통장이 사용됐지만, 이처럼 대규모로 유령법인 설립을 통한 대포통장이 범행에 쓰인 것은 처음이다.

이와 비슷한 유형의 범죄를 예방하고, 법인과 법인명의 통장이 범행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관련법 개정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 같은 유령법인을 통한 범죄는 도박사이트의 돈세탁 이외에도 각종 개인 범죄는 물론 기업들의 비자금 형성 등 다양하게 이뤄질 수 있는 만큼, 법인 설립 절차를 일정 부분 제한하거나 설립 요건을 다시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유령법인 설립과 통장 개설 절차 및 과정이 생각보다 너무 쉽게 진행됐다”며 “기존에 활용하던 개인 명의 통장보다 법인 통장은 피해자와 금융기관으로부터 큰 의심도 받지 않는 만큼 또다시 범죄에 활용될 수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담당 부서를 통해 법인 설립 과정에 대한 문제점을 분석, 대안 등을 충분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최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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