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희망이다] 배명직 기양금속공업대표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뚝심 ‘표면처리 1호’ 대한민국 명장까지…  
뿌리깊은 도전DNA ‘기술 코리아’ 다시 불태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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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눈썹, 이글거리는 눈빛, 다부진 체격에 당당한 걸음걸이.

대한민국 표면처리 분야 1호 명장인 배명직 기양금속공업 대표(54)의 첫인상은 무척이나 강렬했다.

그의 태도 하나하나에는 대한민국 명장으로서의 자긍심과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 배여 있었다. 경북 예천군 시골 농부의 맏아들로 태어나 이제는 세계를 대표하는 도금 명장이 된 그를 만나 기능인으로서 삶과 대한민국 기술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 도금과 인연 맺다

지난 23일 오전 안산 도금클러스터에 위치한 기양금속공업 사무실에서 배 명장을 만났다. 채 10평이 안될법한 작은 집무실에는 각종 상패와 트로피, 메달, 감사패, 표창장 등이 가득차 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도금 명장으로 그가 걸어온 길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현재의 자리까지 올라오는 데에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어렸을 때 참 대책 없이 살아왔다”던 배 명장의 얼굴에 문득 아련함이 떠올랐다.

 

학창시절, 공부가 싫어 ‘기술 배워서 돈 벌자’는 생각으로 경북 영주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화공과가 뭔지도 모른 채 갔던 학교에서 배 명장은 소위 말하는 ‘짱’이 됐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던 시절이었죠. 요즘 말로 양아치(?)라고 하나요. 그냥 졸업장 받아서 돈이나 벌자는 생각이었지 도금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무작정 대구로 몸을 향했다. 안경테, 낚싯대, 피혁 공장 등 일대 공장을 무일푼으로 전전하면서 일을 배웠다. 당시 한 공장에서는 하루종일 온몸으로 염산가스를 맞으면서 ‘눈물 젖은 빵’을 먹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변화의 계기가 찾아왔다. 군대를 대신해 서울 도봉구의 한 도금공장에서 방위산업체 근무를 시작했다. 매일 코피를 흘려가며 ‘진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폐수처리장 관리부터 기술부, 관리, 구매, 영업까지 모든 직종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노력의 결과일까, 23살 고졸 출신의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던 청년이 과장까지 승진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또다시 시련이 닥친다. 도금공장이 부도가 난 것이다.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법정관리인을 찾아 그간의 신용만을 바탕으로 공장 내 부지 30여평을 얻어 ‘명일공업’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현 기양금속공업의 첫 시작이었다. “가진 게 하나도 없었지만 공장에 있는 기계를 옮기고 부지를 일부 떼어서 처음으로 창업에 나섰습니다. 그 어려움을 겪고 내 회사를 갖게 되니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더라구요”

 

■ 대한민국 명장이 되다

자신만의 회사를 차린 뒤 도금 관련 특허를 4건 개발하면서 업계에 이름을 알리고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배 명장. 그러나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기술을 이론과 접목시키고자 35살 늦은 나이에 대학생이 됐다. 현 재능대학 표면처리과에 입학한 것. 대학을 다니며 도금기능사 자격 두개를 취득하며 이론도 쌓았다.

 

내친김에 한국산업기술대 대학원 신소재공학과에 진학해 석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학창시절 공부가 싫어서 기술을 배웠는데 공부가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죠. 힘든 줄도 모르고 기능장 시험까지 준비했습니다. 정말 독하게 마음을 먹었더니 모든 일이 술술 풀렸습니다” 3수 끝에 기능장 시험에 합격한 그에게는 현역 중소기업 CEO 기능장 1호의 영예가 돌아갔다.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왕 시작한 일 끝을 보자’는 생각에 지난 2007년 기능인으로서 최고 영예인 ‘대한민국 명장’에 도전, 국내 첫 표면처리 분야 명장으로 등록됐다. 그의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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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장, 세계로 나가다

대한민국 명장으로 인정되고 나면 주어지는 혜택 중 하나가 바로 해외연수다. 이때 독일과 스위스 등 기술 강국을 찾은 배 명장은 충격에 휩싸였다.

“독일 하면 쌍둥이칼, 스위스는 시계 같은 대표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생각하니깐 딱히 떠오르는 대표 브랜드가 없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를 우리 대한민국 명장들이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대한민국 명장 30여명이 참여한 브랜드 ‘골드 스퀘어’를 탄생시킨 것도, 주석ㆍ스테인리스 등에 순금을 도금처리해 다양한 장식품이나 트로피 등을 만드는 배 명장만의 브랜드 ‘골드 마이스터’를 론칭한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그중 역점 상품은 바로 ‘황금칼’이다. 마모가 되지 않고 쇠냄새가 배지 않는 이 칼은 현재 유명 셰프들이 가장 선호하는 칼 브랜드로 명성을 쌓고 있다. 내년에는 국내 200개 대리점은 물론 미국지사를 만들고 본격적인 해외 진출에 나설 계획이다.

 

“임가공만 하다가 내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게 또 매력이네요(웃음). 준비는 끝났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브랜드를 만들어서 한국의 기술을 세계에 드높이겠습니다”

 

■ 기술인재 없인 기술한국 없어… “뿌리산업 지켜야 한다”

배 명장에게는 또 다른 사명이 있다. 대한민국 명장으로서 후배 기능인을 양성하고, 그들이 더 좋은 여건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 마이스터고, 대학 등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오면 열 일을 제쳐놓고라도 찾아가는 이유다.

 

그는 현 국내 뿌리산업의 현실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우수한 기능인들이 존중받는 사회가 됐고, 정부의 기능인에 대한 대우도 좋아졌지만 제조업의 근간인 도금, 금형 등 ‘뿌리산업’은 무너져가고 있기 때문. 그는 이러한 원인으로 인재육성의 미흡을 꼽았다. “기초산업 인재 양성이 되지 않으면 우리 뿌리산업을 모두 외국인 손에 맡겨야 할지도 모릅니다. 

산업 근간에 이바지하는 젊은 인재가 나올 수 있도록 정부에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기술은 우리 손으로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평생 기능인으로 살아온 대한민국 명장의 마지막 말이 진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관주 기자

사진=김시범 기자

 

PROFILE

현 기양금속공업 대표이사

현 비엠제이 대표이사·현 대한민국명장회 이사

표면처리 1호 대한민국 명장·업계 1호 대한민국 산업현장교수

금속공예(금속표면처리부문)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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