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를 말하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기득권 스스로 내려놓기 안되면… 결국 대통령이 나서야”

▲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연구소에서 동반성장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오승현기자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동반성장 전도사’라 불린다. 

2010년에 정부기관으로 동반성장위원회를 만들어 초대 위원장으로 재임했고 이후에도 동반성장문화의 조성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정 이사장은 우리 사회에는 동반성장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것을 실천할 대통령의 철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에 정치권이 보내는 러브콜과 관련해서는 “동반성장을 위해서는 뭐든 할 용의가 있지만 정치에 진출할 준비는 안됐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 동반성장이 이 시대에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동반성장의 DNA가 있다. 오래전부터 두레, 향약 등 상부상조하며 동반성장을 해온 전통이 있다. IMF 외환위기 당시의 ‘금 모으기 운동’은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많은 보탬이 됐다. 경주 최부자집이나 김제 인동장씨 집안처럼 동반성장의 모범을 보인 가문도 있었다. 

우리 정서에만 맞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나 노르웨이에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라는 말이 있다. 동반성장은 인류의 보편성에도 맞는 것이다.

 

지금 한국 경제의 어두운 면은 저성장과 양극화가 매우 심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치권력의 집중에는 민주주의를 위한 저항이 많이 있었지만 경제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에 대해서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개개인의 생활이 곤궁해지고 힘들어지면 저항이 크게 일어나 사회 전체가 결속력을 잃고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IT기기의 발달로 타인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정보는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시대다. 내 주위는 물론 외국 사람들이 돈을 어떻게 벌어, 어떻게 쓰는지 쉽게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부자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면 저항은 피할 길이 없다고 본다. 동반성장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유일한 길이다.

 

- 동반성장을 위해 애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리고 특강을 다니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동반성장은 남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된다. 제 경험부터 소개하자면 집안이 가난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저에게 정신적 스승이 되어 주신 분이 계시다. 3ㆍ1운동 당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명에 더해 제34인으로 불리는 프랭크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박사가 그분이다. 

제가 돈이 없어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려고 하자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신 분이기도 하다. 그분이 저에게 “한국의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 소득격차나 빈부격차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가르쳐주는 공부를 하라”고 하셨다. 경제학도 그래서 하게 됐다. 동반성장은 저의 필생의 소명이라고 할 수 있다.

 

특강을 다니며 가장 많이 듣는 말씀이 뭐냐면 제가 이익공유제를 주장하는 걸 보면서 색깔이 빨간 줄 알았더니 직접 들어보니 안 그렇다고 하신다. 다음으로 많이 듣는 말이 평소에도 동반성장의 개념에 대해서는 사실 거부감이 없었지만 이제는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신다. 그런 말씀을 들으면 힘이 난다.

그래서 어느 지역 어떤 자리이든 초청해주시면 달려간다. 동반성장연구소의 목적이 동반성장문화의 조성과 확산인데 초청을 해주시면 나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꼭 참석해 동반성장의 필요성, 유용성에 관해 말씀드릴 생각이다.

 

- 기득권의 ‘권한 내려놓기’가 중요하다. 기득권층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은 무엇이 있나.

동반성장이 세계적 트렌드가 되고 있다는 것을 대기업, 기득권층에게 알려야 한다.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공약 1번이 전 산업에 걸친 이익공유이다. 힐러리의 이익공유는 회사가 큰 이익을 낼 때 회사 내부의 노동자들에게 더 나눠주자는 것이라 조금 차이가 있지만 그런 예를 세상에 많이 알려야 한다. 

워런 버핏이나 마이클 블룸버그, 빌 게이츠 등이 사회에 큰 돈을 쾌척하고 동료 부자들에게 같이 내자고 하는 것을 보고 월스트리트에서 일어난 지난 2011년의 ‘월가를 점령하라’는 젊은이들의 시위가 잠잠해졌다고 한다.

 

수출 대기업이 이익을 많이 올릴 수 있었던 데에는 협력 중소기업이 좋은 물건을 만든 공도 있다. 협력 중소기업을 원가절감의 대상으로 볼 게 아니라 같은 배에 탄 파트너로 봐야 한다. 자꾸 알려서 대기업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재벌 총수들이 원가절감하려다 보면 결국은 협력업체 후려치기를 잘한 사람들이 승진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사고과 등을 바꿔야 하는데 잘 안 되는 모양이다.

 

기업이 안하면 결국엔 대통령이 나설 수밖에 없다. 재벌 스스로 바꾸는 게 가장 좋지만 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유무형의 압력을 넣어야 한다. 대통령은 확고한 철학과 강한 의지가 필요한 자리다.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필요한 정책은 강력하게 써야한다. 

주변에서 부작용을 우려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신념도 있어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중소기업의 업종 등을 보호하기 위한 법제화, 준법제화 노력이 필요하다.

 

- 한중 FTA와 관련해 무역이익공유제에 대해 사실상 준조세에 해당된다는 반론이 제기됐는데.

상징적으로는 큰 의미를 갖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국가의 목적이 모든 국민이 고루 잘 살게 하는 것이라면 (FTA를 통해) 이익을 보는 분야가 갹출해서 손해 보는 분야에 도움을 주는 것은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누구한테 얼마를 거두어, 누구에게 얼마나 줄 것인가라는 어려운 기술적인 문제는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상징적으로는 큰 의미가 담긴 것이다.

 

- 통일시대를 대비해 남과 북이 함께 성장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가 됐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보완돼야 할 점이 있다면.

단기적으로는 금강산관광 재개를 긍정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사실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욕심에 제가 정부에 들어갔다. 물론 양극화도 완화시키고 싶었다.

 

 처음 정부에 들어가서 북한에 쌀, 비료, 약을 지원하자며 국무위원들을 설득하는 와중에 천안함 폭침 사태가 일어났다. 그로 인해 5ㆍ24조치까지 이뤄지면서 하고 싶은 일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는 5ㆍ24조치를 점진적으로 풀 때가 됐다고 본다. 북한은 자존심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북한이 유감을 표시하는 수준에서 제재 조치를 점차 완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개성공단은 통일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 상황이 어떻게 급변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개성공단만큼은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개성뿐만 아니라 해주, 신의주, 원산 같은 곳에 더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남한에도 북한 노동자들이 와서 일할 수 있는 공단을 만들었으면 한다. 이렇게 남과 북의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게 해서 10년, 15년 뒤에 이것이 통일이구나라고 느끼게끔 해줘야 한다.

 

지금 남한과 북한의 경제수준이 40대 1이다. 북쪽 사람들이 통일에 찬성하려면 남쪽의 동반성장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남쪽에서의 소득격차가 심하면 북한 사람들 통일에 대해 고민하고 싫어하게 될 것이다. 남쪽의 동반성장은 북측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 최근 각종 통계와 금수저, 흙수저 논란을 보면 사회격차가 점점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격차 해소를 위해 중요한 점은.

경제의 중심은 기업이다. 현재 대기업은 돈이 천문학적으로 많지만 투자대상이 없어 안한다. 반면 중소기업은 돈이 없어 투자를 못하고 있다. 대기업에 흘러갈 돈이 중소기업으로 흘러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제가 강조하는 것이 초과이익공유제,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 중소기업 위주의 정부발주이다. 대기업은 돈은 있는데 투자대상이 없고 핵심첨단기술이 없다. 대학연구소나 기업연구소가 활성화 되어야 한다. 그러한 연구성과가 나올 때까지 중소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돈이 그곳에 흐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경기도가 지자체로서는 처음으로 공정경제실을 구성해 경제민주화 관련 업무를 추진하고 있는데 방향성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특히 경기도가 물류 방면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모범 모델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

다른 분야는 잘 모르지만 경기도가 산업이 가장 많이 발전한 곳인 만큼 물류분야에서만큼은 우수 모델을 만들어 경기도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적용 가능하길 바란다. 모든 분야를 다할 수는 없지만 한 두가지 분야에서는 성공적인 모델을 정착시켰으면 한다.

 

 대담=강해인 정치부 부국장 / 정리=정진욱기자

정운찬 이사장은…

▲1947년 충남 공주 출생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조교수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 교수

▲미국 하와이대학교 초빙 부교수

▲영국 런던정경대학 경제학과 객원 부교수

▲독일 보쿰대학교 초빙교수

▲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

▲보건복지부 국민연금발전위원장

▲제23대 서울대학교 총장

▲제40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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