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일어서려는 노숙자들, 장애를 가졌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꿈을 그려가는가 하면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돕는 장애인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같이 따뜻한 마음으로 차갑게 얼어붙은 세상을 조금이나마 녹여나가는 이들을 만났다.
노숙인 자립 돕는 잡지‘빅이슈’
“안녕하세요, ‘빅이슈’ 신간이 나왔습니다!” 부천역 인근을 지날 때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바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외치는 빅이슈 판매원의 목소리다.
서울과 경기도내 주요 지하철역 입구에서는 빨간 조끼와 빨간 모자 차림의 빅이슈 판매원을 만나볼 수 있다. 이들은 한때 노숙의 경험이 있는 ‘홈리스(노숙인 등 주거 취약 계층)’로 이제는 노숙이 아닌 빅이슈 잡지 판매를 위해 거리에 나서고 있다.
빅이슈는 지난 1991년 영국에서 홈리스가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하고자 사회·문화·예술 등 각 분야의 유명인들이 재능을 기부해 만들어진 대중문화 잡지다. 홈리스에게 잡지판매라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 경제적 자립을 돕는 것이다. 현재 영국을 비롯해 한국·호주·일본 등 10개국에서 발행되고 있다.
한국판 빅이슈는 지난 2010년부터 노숙인 봉사 단체 ‘거리의천사들’에서 사단법인으로 독립한 빅이슈코리아(발행인 안기성)에서 제작·판매되고 있다. 창립 초기 ‘과연 노숙인들에게 경제적 자립 기회를 주는 것이 효과가 있을까’라는 숱한 걱정과 우려가 있었지만, 어느덧 창립 5주년을 맞이했고 빅이슈 판매원을 거쳐 간 홈리스만 600여명이 된다.
홈리스가 빅이슈 판매원이 되고 싶어 스스로 빅이슈코리아를 찾아오면 첫날 10권의 잡지를 무료로 받게 된다. 5천원인 잡지 한 권을 판매하면 빅이슈 판매원은 이 중 절반인 2천500원을 수익으로 얻게 되고 이 돈으로 다시 이튿날 판매할 잡지를 구매해 나가는 방식이다. 2주간의 임시 판매원을 거치면 정식 빅이슈 판매원이 될 수 있다.
이후 6개월 이상 판매하고 빅이슈코리아의 도움을 받아 꾸준히 저축하면 임대주택의 입주 자격까지 주어진다. 현재까지 70여명이 임대주택에 입주해 안정된 주거지를 확보했고, 20여명의 홈리스가 빅이슈 판매원을 거쳐 재취업에도 성공했다.
빅이슈코리아 관계자는 “빅이슈는 홈리스들에게 누군가의 도움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사회생활을 다시 느껴 내일을 꿈꾸는 희망의 터전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면서 “앞으로도 한 사람이, 한 가정이 사회로 돌아올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니 빅이슈 판매원들을 만날 때 따뜻한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한편 빅이슈는 매월 1일과 15일에 두 번 발행되며 서울 및 경인지역을 포함해 대전과 부산 등 70여곳에 빅이슈 판매처가 있다.
“작은 도움이 어려운 이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된다니 제 삶도 희망으로 가득차네요”
하루에도 수백여대의 차량과 행인이 바쁘게 지나치는 수원 북문로터리에는 작지만 큰 희망이 싹트는 공간이 있다. 바로 공윤양씨(48·여)의 구두수선가게다.
공씨는 20대 시절 내내 10년 가까이 의상실에서 옷과 가방을 만들며 빛나는 미래를 그려 나갔다. 그러나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지체장애 4급의 장애인인 공씨는 한계에 직면했다. 직업의 특성상 하루종일 작업대에 서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버티고 버텼지만 결국 20대의 마지막인 29살의 꽃다운 나이에 직업을 변경했다. 일명 ‘구두닦이’라 불리는 구두수선업이다.
구두수선으로 버는 수입은 많지 않았지만 공씨는 천직인 양 성심성의껏 손님을 대했다. 한우물만 파던 공씨는 10여년 전부터 ‘봉사’라는 의미에 눈을 떴다. 그리 넉넉치 않은 가두구두수선협회 회원들과 함께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을 위해 기부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
공씨의 하루 일과는 첫 손님이 낸 금액 중 1천원을 영업장에 비치된 ‘1% 희망모금통’에 넣는 ‘첫 손님 1천원’으로 시작된다.
공씨의 작은 기부와 함께 손님의 따뜻한 마음을 담은 도움이 더해지면서 모금통은 어느덧 가득 채워진다. 통상적으로 6개월 가량이 지나면 가두구두수선협회 회원들의 각 영업장에 모인 총 돈은 약 200만원 가량이 된다는 것이 공씨의 귀띔이다.
이렇게 모인 기부금으로 공씨와 가두구두수선협회 회원들은 지난 2000년 무렵부터 가정환경이 어려운 수원시내 초·중·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공씨는 “내 아들과 딸 같은 아이들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기가 죽거나 힘들어 하는 것이 마음 아파 기부를 시작했다”며 “도움을 받은 한 학생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서 미안했는데 너무나도 감사하다’며 보낸 문자에 펑펑 울기도 했다”고 전했다.
현재는 수원시청 사회복지과에 모금액을 전달해 어려운 환경이지만 자격기준이 안 돼 지원받지 못하는 이웃을 돕고 있다.
공씨는 “작은 도움이지만 어려운 이들의 삶에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 삶도 행복해진다”면서 “마음이 넉넉하지 못하면 항상 불행할텐데, 감히 내가 진정한 부자가 아닐까 생각한다”며 활짝 웃었다.
“장애가 제 꿈과 희망을 막을 수는 없어요”
불빛만 겨우 보일 정도로 심한 시각장애를 앓고 있는 아주대 사학과 2학년생 박인범씨(21·시각장애 1급)는 장애인이라 대학생활이 힘들 것이라는 편견과 우려를 이겨내고 아주대학교 사학과에 진학, 자신의 장미빛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다.
박씨를 대학으로 이끈 것은 ‘역사공부를 하고 싶다’는 꿈 하나였다. 그동안 다닌 맹학교에서는 일반교과보다 안마사 실습교육이 중점적으로 이뤄져 아쉬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시각장애인이지만 단 한 번도 안마사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면서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10여년간 맹학교를 다니다가 처음 일반학교로 진학해 비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몹시 두려운 일이었다. 학교생활을 어떻게 혼자 헤쳐나가야 할지 막막했고, 친구들과의 대화에 어울리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편견 없이 다가와 준 친구들 덕에 과 활동은 물론 기타 동아리, 산악 동아리 등 여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어느덧 2년째 대학생활을 해내고 있다.
또 박인범씨는 학교 밖에서는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새로운 삶을 제시하는 희망전도사로 나서고 있다.
한국시각장애대학생회 수도권지부장인 그는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토대로 대학 적응에 어려워하는 새내기 시각장애 대학생, 대학에 가고 싶지만 두려워하는 시각장애 중·고등 학생들을 위한 멘토링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시각장애 학생들을 직접 만나 대학생활에 전혀 겁낼 필요가 없다며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면서 “앞으로 시각장애 친구들이 자신의 꿈을 위해서 한 발짝 나아가도록 돕고싶다”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이처럼 교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박씨는 “대학에 오기 전에는 역사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대학에 와서 많은 경험을 해보니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은 여러가지 진로를 고민 중”이라며 “내가 가진 시각장애는 남들보다 조금 불편한 것일 뿐 내가 꿈을 향해 나아가는데는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한진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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