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번뇌와 꽃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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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행사가 끝이 났다. 정리를 하다보니 꽃다발 두 개가 남아있다. 뒷정리를 하는 내내 장미가 한아름 묶인 꽃다발에 눈길이 갔다. 내심 탐이 났다. 원래 꽃을 좋아하는지라 방에 꽂아두고서 보고 싶어서이다. 꽃다발을 얻어서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에 마치 날개가 달린 것 같다. 입가엔 연신 미소가 흐른다. 기쁨은 잠시, 번뇌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도중 등산복 차림의 할머니 몇 분이 타셨다. 꽃다발을 보더니 그 중 한 분이 꽃이 너무 예쁘다며 한참을 이야기하신다. ‘이렇게 꽃을 좋아하시는데 그냥 드릴까? 어쩔까?’ 그렇게 마음속으로 갈등하는 사이 내려야 할 곳에 도착해버렸다. 결국 꽃다발을 들고 내렸다. 숙소로 돌아와 장미가 다치지 않게 잘 꽂아서 햇빛이 비치지 않는 시원한 곳에 두었다. 빨리 피어버리면 너무 아쉬우니까.

 

그렇게 장미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시골 절에서 불사회향이 있으니 며칠 뒤에 내려오라는 연락이 왔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있나! 일주일 후에나 돌아올텐데 놔두고 가면 그새 다 시들테고, 그렇다고 들고 가자니 그것도 그렇고, 이 꽃들을 어쩌지? 고민 끝에 지나는 길에 지인에게 들러 선물하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고 내려갈 날이 되었다. 이것저것 짐을 챙기고 나니 꽃다발이 문제였다. 햇볕을 받으면 차안이 뜨거운데 먼 길에 시들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또 가져가지니 짐이다. 중간에 들러서 갖다 주자니 긴 운전길에 너무 번거럽고…, 참 곤란이다. 그래서 꽃을 좋아하는 스님에게 주고 가기로 했다.

 

꽃다발을 들고 옆 건물에 있는 스님 숙소로 향했다. 가다가 꽃을 쳐다보는 순간 문득 마음이 바뀌었다. 경전에 마음처럼 빨리 변하는게 없다 하시더니 정말이다. 도로 발길을 돌렸다. 몇 발자국 걷다가 ‘아니야’ 또 다시 발길을 돌렸다. 이렇게 오분도 채 안걸리는 거리인 그 스님 숙소와 내 방 사이를 왔다갔다하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아, 정말 미치겠군!’ 번뇌가 정점을 찍는 순간이다. ‘내가 이 꽃다발을 왜 갖고 왔을까?’ 후회해도 때는 늦었다. 마음이 이미 번뇌에 휩사여버린 것이다. 꽃에 눈이 멀어 욕심을 낸 자신을 자책하면서 꽃다발을 차에 던져넣고 출발했다.

 

하지만 번뇌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래도 이왕 가져왔으니 잠시 들러서 꽃다발을 지인에게 주고 갈까, 그냥 갈까, 가는 내내 갈등을 반복하는 동안 어느새 절에 도착했다. 설상가상 여기 오니 꽃다발이 천덕꾸러기 신세다. 법당에 꽃이 지천이요, 숙소는 행사 준비물로 빈틈이 없어 도대체 놓을 자리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들통에 꽃아 샘물 근처에 두었다. 온실에서 곱게만 자란 꽃이라 거친 바깥바람에 며칠 지나지 않아 희나리가 돼버렸다. 결국 이리 되고 말것을!

 

나에게는 그다지 값나가는 물건이 없다. 남이 봐서 탐낼만한 물건은 가지지 않고, 누가 달라고 해도 그리 아까워할 것 없는 정도만 소유한다는 것이 나만의 원칙이다. 그런데 조그만 꽃다발 하나로 이렇게 많은 번뇌가 생길 줄은 미처 몰랐다. 가진 만큼 행복이 아니라, 가진 만큼 집착과 번뇌가 생긴다는 가르침을 이번 일을 겪고서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이후로는 꽃은 물론이고 사소한 것에도 탐하는 마음을 자제하게 되었다. 탐심을 버리라고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뜰에 나서니 온 도량에 매화향기가 가득하다. 무소유의 행복을 강조하시던 법정스님이 새삼 그리운 봄날 오후다. 오늘도 아침 일찍 산책을 나섰다. 빽빽하게 들어 선 도시의 콘크리트 숲 사이로 붉은해가 얼굴을 내민다. 매일 아침 보는 광경이지만 언제나 감동적이다. 참으로 경이롭다. 도심 한가운데서 일출을 보는게 기적같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이 참으로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왜 절에 올까? 절이 왜 발전해야 할까? 신도들은 한결같이 절이 발전했다고 한다. 혹은 발전해야 된다고 한다. 왜 절은 그들 말대로 발전되어야만 할까.

과거에 대한 기억으로 괴로워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두려워한다. 우리는 온전하게 오늘을 살지 못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도문 스님 수원 아리담문화원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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