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동안 축 처져있던 잎들에 밤새 생명의 물이 올라 그 싱그러움이 보기에도 눈부시다. 작년처럼 가뭄이 들면 목마른 나무들도, 물주는 우리도 고생이라 올 여름에는 비가 적당히 왔으면 좋겠다. 시멘트로 덮인 공간이 많아서인지 도시 마당은 시골보다 가뭄을 더 타는 듯하다.
마당을 가로지르다 우연히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다. 우후죽순이라더니, 요사채 앞 대나무 숲에 어느새 새순들이 제법 올라 와 있다. 키가 이층 높이만 하다. 언제 이리 컸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그리 넓을 것도 없는 마당이라 오며가며 볼만도 한데 이제야 눈에 들어오다니! 나도 참 무심하다. 아래를 살펴보니 갓 올라온 듯한 죽순도 몇 개 보인다.
일층 높이로 가지런히 잘라 놓은 대숲 사이로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대순을 보며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관심이 없는 것은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도량을 둘러보니 비온 뒤라 그런지 여기 저기 잡초들도 무성하다. 예전 같았으면 별 생각 없이 뽑아버렸을 터인데 요즘은 선뜻 그러지 못한다. 아무리 잡초라도 하나의 생명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유심히 살펴보면 조그마한 잡초 하나하나 꽃이 다 예쁘다. 햇살을 받으려고 빛이 드는 쪽으로 온 몸을 기울여 열심히 잎을 열고 꽃을 피우려 애를 쓴다.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그들을 보노라면 경외심마저 든다. 그러니 차마 뽑지 못하는 것이다.
원래 화초를 좋아하는지라 잡초 꽃들도 예외일 순 없다. 하지만 마음이 이렇게까지 세심해진 데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자애경을 독송하면서 마음속에 자애심이 예전보다 크게 자라난 때문이다.
‘살아있는 생명이면 그 어떤 것이든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거나 남김없이…모든 생명들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깊이 인식하지 못했던, 그들도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는 생명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했기 때문이다. 삼여 년 동안 자애경을 조석으로 외우는 사이 마치 가랑비에 옷 젖듯이 생명에 대한 자애심이 소리 없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던 모양이다.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누군가는 그러면 채소도 먹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음식은 필수불가결이다. 만약 외딴 곳에서 혼자 살게 된다면 채소를 가꾸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비록 초목이라 해도 생명유지와 상관없이 불필요하게 생명을 해치는 것은 안하면 좋을 일이다. 특히 불교 수행자라면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마당의 잡초들은 언젠가는 도량 청소하는 이에게 뽑혀나갈 운명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굳이 내손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그때까지 만이라도 행복하게 놔두고 싶으니까. 이다음 언젠가 조그만 오두막의 주인이 된다면 이름 모를 잡초들도 주어진 제 삶을 온전히 영위할 수 있게 놔두리라.
사람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성향이 달라진다. 붓다께서는 어떤 것을 계속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게 되면 그것이 그대로 그 사람의 성향이 된다 하셨다. 좋은 성향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삶을 영위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제부터 우리도 나와 모든 생명들이 함께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그러면 나의 삶도 뭇 생명과 더불어 행복해지리라.
도문 스님 아리담 문화원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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