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는 어우러지는 삶의 총체… 민족 전체의 지혜 결집할 때”
대학 입시만을 바라보는 청소년은 꽃 같은 인생의 청춘을, 취업 전선에 목매는 청년들은 꽃 같은 오늘의 꿈을, 내 집 장만에 허리가 휘는 중장년들은 꽃 같은 새끼들의 미소를 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도덕성도 윤리의식도 최소한의 양심도 버려둔 채 앞만 보고 내달린다.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지나쳐야 할까.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야 비로소 지난 세월 보지 못한 그 꽃을 볼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대변환기, 새 시대를 준비하기에 앞서 ‘그 꽃’을 찾아야 할 때다. 수원의 ‘이슬’과 ‘비’와 ‘시냇물 소리’에 흠뻑 빠졌다는 고은 시인에게 묘안을 들어봤다.
-수원에 정착한지 4년이다. 어떤 생활을 보내고 있나.
수원의 이슬하고, 수원의 비하고, 수원에 흐르는 시냇물하고, 시냇물가에 있는 수원의 술하고 아주 친해졌다. 광교산의 첫 수확인 <무제시편>을 시작으로 꾸준히 시를 쓰고 있다. 이달에는 <초혼>이, 오는 10월에는 장편서사시 <처녀>가 나온다.
-수원으로 이사하면서 지역 예술계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수원과 경기도가 가진 문화ㆍ예술계의 한계는 없나.
나의 수원시대는 내 시의 말기를 감당하게 된다. 어디에나 지역의 한계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행위에서 중앙과 민방을 나누는 일은 지극히 천만 차다. 작가에게는 그가 있는 곳이 중앙이고 시야에서 가장 뜨거운 공간이 변방이다. 진리는 늘 변방에서 태어난다.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함께했다. 그 과정에서 위기와 방황의 순간도 있었는데.
자기의 동시대는 자기 자신만의 삶을 이루는 시대가 아니다. 그 시대 속의 전체가 어우러지는 삶의 총체이다. 나는 그런 시간의 총체에 속해 있는 내 삶에서 나만의 얼굴을 거울 속에서 볼 수 없다. 나는 나이자 타자들이기도 하다. 나의 연대기란 1930년대 전반 식민지 체제가 한층 더 공고해진 시기에 그 기원을 둔다.
바로 만주 사변, 중일 전쟁으로 이어진 한반도의 식민지 체제는 전시병참기지이자 병력ㆍ화력의 제2전선이 된다. 태평양전쟁은 미국ㆍ영국에 대한 일본의 기습작전으로 확대된다. 그야말로 세계대전이다. 이 전쟁 후 해방된 조국은 곧 분단의 산야가 되었다. 기어이 1950년 한국전쟁이 동서냉전과 열전의 핵심적인 사태로 발전한다.
식민지로 굶주렸고 분단과 전쟁으로 죽었다. 몇 백만 명이 3년 미만의 전쟁에서 죽었다. 거기서 살아남았다. 그 뒤의 독재를 지나 무엇 하나 역사 청산이 없는 상태의 할 일 많은 오늘에 이르렀다. 극복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다. 시대 속에서 정신의 내성이 생겨난 것이다. 위기는 의지를 낳는다. 방향은 지향을 낳는다.
-요즘은 많은 것을 쉽게 포기하고 절망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인가.
그동안 이뤄 놓은 실적을 하나하나 까먹고 있는 것 같다. 노인에게도 청년에게도 한꺼번에 내일이 오기 어려운 사회에서 우리는 민족 전체의 지혜를 결집해야 한다. 수원에는 팔달산이 있고 팔달문이 있다. 다 불러들이고 다 모여서 미래의 공동체를 찾아야 한다.
-특히 청년들이 많이 힘들어 한다.
말 몇 마디로 넘어갈 수 없는 현실 문제다. 첫째 정치해설을 냉엄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 젊은이라는 당사자의 내면에 의지의 충격을 주어야 할 것이다. 젊은이의 문제가 나와 젊은이가 속한 세상에서 변화를 기대한다.
-위기가 곧 기회일 수도 있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자기 자신으로부터 거품을 걷어낼 것. 공(公)을 삶의 최우선 가치로 섬길 것. 그래야 시가 존재하는 이유에도 가치가 부여될 것이다.
-삶에서 시도 빼놓을 수 없다. 시를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시와 삶을 나눌 줄 모른다. 삶이 시이자 시가 곧 삶이다. 시란 인간의 본성이 내는 율동이다. 진부하게 표현하면 영혼의 춤이다.
그래서 나는 시를 장르로서의 문학 안에 가두어 두지 않는다. 시는 소설이나 희곡 등 다른 분야의 하나로 구별될 수 없게 그것은 의미의 윤곽이 무효이다. 나는 1만 편의 시와 1편의 시를 동시적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몇 천 년 동안 신봉되어 온 시학이나 시론들을 지워버린 어떤 백지의 원야에서 오늘 쓰는 시가 태초의 시가 되기를 꿈꾼다. 시를 쓴다는 의미를 내가 우주의 리듬, 우주의 사투리로 우주의 꽃을 피우는 일에 두고 싶다.
-현대시가 일본 문학의 모방으로부터 시작됐지만, 지금 한국 문학은 세계적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한국문학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아니다. 어느 곳에 형식을 받아들인 것을 꼭 기억할 필요는 없다. 시 역시 바람에 비유되고 파도에 비유된다. 어디서 오기로 하고 어디로 가기도 한다.
현대서 100년 이상의 한국시는 반드시 세계 각국의 시에 대비할 필요도 없다. 당당한 것이다. 나는 지난 20년간 세계 각국의 초청행사 등 한국의 시나 문학의 성과로 인한 명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 치졸한 자만도 남루한 콤플렉스도 내버려야 한다.
-노벨상 후보로 여러 번 올랐는데, 아쉬운 점은 없나.
내 시와 소설들은 28개 국어로 나가 있다. 또 나는 몇 개의 국제 문학상도 받았다. 그러나 너무 상 타령만 하는 우리 사회는 높은 품위의 사회이기를 포기한다.
-최근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받으며 한국 문학의 세계화 가능성을 입증했다. 한국 문학의 전환점을 맞이한 것으로 보이는데.
전환점은 상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한국문학은 자신의 산을 쌓아 올리고 있다.
-특별히 눈여겨보는 후배 문인이 있는가.
아홉 쯤 내 손가락으로 헤아린다. 그들의 이름을 밝히는 일은 싫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늘이 지나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문학은 영구불변의 척도를 사절한다. 다만, 그 문학의 생애가 완료된 상태에서만 그 작가의 진면목은 여러 얼굴로 칠해질 것이다.
-지난해 파리에서 평화의 시를 낭송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의 시인으로서 어떤 감정이었나.
지난해는 유네스코가 창립 70년이 되는 해였고 공교롭게도 한반도 광복 역시 70주년이 되었다. 유네스코 파리 본부에서는 2년마다 세계 회원국가 유네스코 대표와 멤버들이 참석하는 정기총회가 열린다.
이 총회 행사의 하나로 분단국가의 시인이 초청받아 세계평화를 위한 자작시를 낭독했다. 본부의 보코바 사무총장과 한국 유네스코 총장 민동석 선생도 열렬하게 이 행사를 추진했다. 그래서 유네스코 대회장에서 각국 대표들과 파리인 800여명의 청중에게 내 시를 들려주었다. 파리의 시인들도 나를 축하하러 왔다. 뜨거운 시간이었다.
-통일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이 문제는 1970년 후반 이래 나의 운명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나는 조급한 통일을 말하지 않는다. 나는 평화공존의 기간이 그동안의 분단고착의 적대공존기간보다 더 길기를 바란다. 나는 이런 상상의 토대 위에 다연방 통일의 역사를 이룩하고 싶다. 스위스나 말레이시아의 예가 있다. 독일 연방이나 미 합중국의 연방체제도 있다.
-남북의 통합 국어사전인 ‘겨레말큰사전’의 편찬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진행사항은.
현재는 중단된 상태다. 남과 북이 공동으로 편찬하는 겨레말큰사전은 우리 언어의 원전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이다. 우리 언어는 세계 13위의 대국어다. 하지만 요즘 대중의 언어는 완전히 파괴돼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될 것으로 보인다.
다시 회복하기도 늦었다고 판단된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에 기대하는 것이 많다. 북한은 아직까지 전통 언어를 많이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언어가 굴절된다 하더라도 다시 살려낼 수 있는 근거를 만들 수 있다.
-대선이 다가온다. 경제적 외교적으로 대한민국은 전환점에 서 있다. 지도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속지 말아야 한다. 뽑는 자에게 뽑히는 자의 무능과 야만이 돌아오는 것이다. 나는 대선 때마다 후보보다 투표권자의 자질이 걱정된다. 오죽하면 니체가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했겠는가.
고은 시인은…
▲1933년 출생
▲<현대문학>에 시<봄밤의 말씀> <눈길> <천은사운> 등을 추천받아 등단
▲1960년 첫 시집<피안감성>
▲1974년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 등 100여 권의 시·소설·수필·평론 출간
▲現 단국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
송시연ㆍ손의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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