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기,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자기 책임은 없고, 남 탓만 하면서…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까”

▲ 서강대 철학과 최진석 교수가 서울 건명원에서 현대인들의 답답한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 주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으로 가야 한다”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지도자, 그리고 ‘잘못된 것은 네 탓’ 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국민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시범기자
“모든 부문이 한계에 달했다. 희망을 이야기하기엔 너무 위중한 상황이다.” 대한민국에 대한 최진석 서강대 교수(건명원 원장)의 진단은 절망, 그 자체다.

 

‘선진국 따라하기’로 성장해 온 우리나라가 더 이상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갈 길 잃은 채 신뢰는 사라졌고, 수 십 년째 모든 기관들이 구호처럼 외치는 상상력과 창의력은 도통 발휘되지 않는다.

 

최 교수의 명확하고 단호한 분석대로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후퇴’뿐이다. 정녕, 답은 없는가. “낭만스러운 혹은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모두 자신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 의미와 가치를 묻고 반성해야 한다. 각성하고 사명을 찾는 사람만이 희망이다.”

-지금 한국 사회를 어떻게 판단하는가.

‘아주’ 정체돼 있다. 신뢰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 모든 분야가 한계에 달했다.

 

사회가 발전하는 것은 경제ㆍ사회적 조건과 나아갈 비전이 일치할 때 가능하다. 유례 없는 발전을 기록한 우리나라가 그랬다. 독립한 상황에서 건국이라는 사명이 일치, 나라를 세웠다. 건국 다음에는 나라를 튼튼하게 해야 하는 사회적 조건과 산업화라는 비전이 일치하며 온갖 소음에도 완성할 수 있었다. 산업화의 결과로 도시화, 공업화가 진행됐다.

이 때 농업 중심에서 공업, 농촌 중심에서 도시로 주도 세력이 바뀌면서 계급 조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했다. 그것이 곧 민주화다. 우리나라가 여기까지는 해냈다. 많은 선례를 따라하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제 도래해야 할 단계가 ‘선진화’인데, 비전 설정조차 못하고 있다. 선진화는 추상적인 단계로 구체적인 모델 없이 창의적인 새 길을 찾아야 하는데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몇십 년째 정치인은 하던 소리만 계속 하며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교육은 길을 잃었다. 법조인도 제 기능을 못한다. 문제는 국제 경쟁 안에서 이런 정체는 바로 후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선진화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

선진국은 앞서 가고 후진국은 뒤따라간다는 차이가 있다. 앞서 가려면 선도력이 있어야 한다. 한글처럼 우리가 시작한 그 무엇 또는 새로 만드는 능력이 선도력이다. 이 선도력을 가지려면 불편한 무엇을 발견해서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것이 탄생하지 않겠는가. 선진국에는 질문이, 중진국이나 후진국에는 대답이 많다.

 

대답은 있는 지식을 누가 요구할 때 다시 뱉어내는 것이다. 대답할 때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지식과 이론이 지나가는 통로, 중간역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 선진국이 되려면 선도력을 가져야 하고, 선도하려면 새로움을 꿈꿔야 하고 새로움을 꿈꾸기 위해서는 질문해야 한다.

-정치인과 언론인 등 사회 각계각층은 어떻게 바꿔야 하나.

일단 정치인은 왜 정치를 하는지 본질적인 반성을 해야 한다. 자기 패거리들의 논리에 의한 반성이 아니라 ‘내가 죽기 전에 완수해야 할 나만의 고유한 사명’ 등 근본적인 물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질문과 반성 후에도 다시 태어나기 어렵다면 지금의 정치인은 다 사라지고 새로운 정치인으로 채워지든지….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뭘 기대할 수 있을까. 언론은 또 어떠한가. 사회가 나아갈 새로운 빛을 발견하고 그 빛을 향해 말의 논조를 구성해내는 게 언론 아닌가. 언론도 천편일률적으로 집단화 되었다. 한마디로 낡았다. 회의적이다. 희망을 얘기하기엔 상황이 너무 위중하다.

-암울하다. 그 때문인지, 많은 중산층과 가정을 꾸린 30~40대는 이민을 고민한다.

북한산에서 등산객 무리를 봤다. 세월호 사건을 두고 ‘지켜야 할 규정이 수백 가지인데 그 중 네댓 개만 지켰어도 그 정도 사고는 안났다’고 이야기했다.

 

정작 자신들은 계곡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규정이 붙어 있는 난간을 넘어가서 맥주를 마시고 등산로에 진입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는 잘하고 있는데 남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 남 탓만 한다. 자기 책임성 없이,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돌린다.

 

정치인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이다. 그런 정치인을 뽑아 놓고 욕한다. 이민을 고민하기보다 각자, 모두 삶의 의미와 가치를 심층적으로 따져 묻고 반성해야 한다.

 

-취직 못해 힘들어하는 청춘들에게 질문하고 사명을 발견하라는 것이 너무나 낭만적인,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릴 것 같다.

‘어디에 취직할까’라는 물음보다 먼저 ‘나는 누구인가’ 혹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고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각성을 통해 이뤄진 취직과 그렇지 않은 취직은 그 개인의 삶을 전혀 다르게 만든다.

 

‘직’은 자기가 맡은 역할이고, ‘업’은 사명 혹은 자아실현을 의미한다. 직업의 개념은 그 역할을 통해 자기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각성 없이 직만 가진 것이 대부분이다. 직업인이 아니라 직장인이다. 그래서 행복하지가 않다. 휴일에는 자신으로 존재하지만 일에서는 자기가 자각되지 않는 이유다. 물론 어렵다. 보이지 않는 미래가 불안하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찾고, 해야 한다. 온전한 자기 충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직과 업이 분리된 사람들로 채워진 사회는 무르다. 내가 누구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계속 던지고, 반성하고, 자기 삶을 완성하려는 사람은 부패에 빠지지 않고 돈 몇 푼에 영혼을 팔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로 채워져야 조직과 사회와 나라가 튼튼해진다. 우리나라의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온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드러날 것이다.

정말 잘 뽑아야 한다. 하던 소리만 계속 하는 사람은 피해라. 조국과 민족의 나아갈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비전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전략적인 비전이어야 한다. 우리에게 새로운 빛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인문학 열풍’이 한창이다. 선진화 비전을 세울 토대가 될 수 있을까.

인문학 열풍이 불고 철학이 회자되는 이유는 선진국, 그 레벨에 맞는 시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문학적 지식을 갖추는 것을 인문학을 하는 걸로 착각하는 게 문제다. 인문학의 목적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인문적 시선을 작동시키며 사는 것이다. 지금의 인문학 열풍을 한단계 더 높이 끌고 올라 가야한다.

-지난해 인문학 아카데미 ‘건명원’을 설립한 이유인가.

지금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희망은 각성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늘어나느냐다. 그런 의식을 가진 사람을 배출하고자 한다. 

나라의 새로운 비전을 고민하고 사회를 어떻게 이뤄나갈지 질문하는, 그 과정에서 자기 책임성과 사명을 스스로 발견하는 인재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현실의 벽 앞에 무너지지 않을 내면을 건설하고, 그 벽을 넘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반역자 같은 인문적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건명원의 뜻이다.

 

-강조하고 싶은 깨달음이 있다면.

아침에 일어나면 짧은 명상을 한다. 그 때 생각한다. ‘난 곧 죽는다.’ 누구나 죽는다. 진리다. 순간순간, 그 하루하루가 삶을 결정한다. 내가 맞이하는 모든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과거는 사라졌고 불안해하는 미래는 오지도 않았다.

 

다음에 할 일 때문에 지금 할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 있다. 미래는 현재를 축적해 열리는 것이다. 미래는 결국 환상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깨닫고, 거기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지금을 봐야 한다.

 

최진석 교수는…

▲ 현(現)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 현(現) 건명원 원장

▲ 서강대학교 철학과 졸업(학사/석사)

▲ 베이징대학교 도가철학박사

▲ 저서 <인간이 그리는 무늬>,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외 다수

류설아ㆍ권오석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