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경남 진주의 촛불집회 연단에 선 한 청소년의 이야기다. 이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는 청소년들이 누구보다 더 잘 안다. “훗날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 한다.”는 청소년의 외침도 있었다. 이들이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와 불평등, 그리고 정치의 비효율과 무능 등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청소년의 의견은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다. 오히려 철저하게 배제되어 왔다.
지금부터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자. 그들도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시민이다. 청소년들이 얼마나 성숙한지, 시민으로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내고 있는 것을 우리는 매주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촛불집회에서도 마주하고 있다. 촛불현장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거대한 민주주의 교육장, 민주주의 학습 효과의 장으로 진화, 발전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투표권을 주자. 선거연령을 현재의 만19세에서 만18세를 넘어 16세로 낮춰도 좋다. 미래세대의 주인인 청소년들을 당당한 주권자로, 정치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자. 청소년들은 정치·사회의 민주화, 교육수준의 향상, 인터넷 등 다양한 대중매체를 이용한 정보교류가 활발해진 사회환경 등으로 이미 독자적인 신념과 정치적 판단에 기초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과 소양을 갖췄다.
OECD의 34개 회원 국가 중 투표권이 만 19세 이상에만 부여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국제사회와 비교해 보아도 한국의 선거연령은 지나치게 높다. 소위,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대부분 국가의 선거연령은 18세다. 심지어, 오스트리아나 브라질, 쿠바 등 국가의 선거연령은 16세다.
역사의 현장에는 늘 청소년이 있었다. 그동안 청소년들은 역사의 중요한 시기마다 주체적으로 움직였다. 역사를 돌아보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서부터 419민주혁명, 광주민주화운동, 효순·미선양의 미군 장갑차 압사 사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등 민주화운동을 비롯해 각종 사회정의를 요구하는 집회시위에는 늘 청소년들이 함께했다. 이 나라의 역사를 위해 청소년들도 함께 싸워왔다는 거다.
수원시정도 마찬가지다. 청소년 100여 명이 참여한 2030도시기본계획 뿐만 아니라 청소년 교통평가단, 주민참여예산 청소년위원회 등을 운영한 경험에서 보면 ‘너희가 뭘 안다고!’ ‘어른들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한방에 날려버렸다. 도시정책 원탁토론 현장에서 만난 청소년이 “어른과 똑같이 1인 1표씩 의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자체가 즐겁다”는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 청소년들에게 정치를 허락하자. 주권자로서 당당히 목소리 낼 수 있도록 하자. 교과서를 통해 민주주의 원리를 가르치고, 참여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청소년들의 정치참여의 길은 사실상 봉쇄되어 있다.
오히려 ‘학생’, ‘공부’, ‘성실’, ‘예의’ 등을 강요한다. ‘너희가 뭘 안다고’, ‘너희는 아직 어리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정치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된다’, ‘사회문제에 자기 의견을 내서는 안된다’ 등의 존재로 여겼다. 쉽게 규정했고, 대상화시켰고, 그래서 청소년의 의견은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제는 솔직하게 인정하자. 향후 한국 사회구조의 최대 피해자는 청소년이 될 것이다. 현재의 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말이다. 지금도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학벌 중시 풍조 속에서 청소년은 입시 위주의 과도한 공부와 부족한 수면에 시달리고 있다.
입시경쟁, 아르바이트, 취업난, 비정규직, 이태백,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삼포 세대’를 이어 ‘N포 세대’까지 더 많은 짐을 미래 청년의 어깨에 올려두고 그것을 견디어야 할 현실 앞에서 좌절할 것이다. 미래의 주인이 되어 나라를 책임져야 하는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주자. 그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다.
염태영 수원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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