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이 끝나고 그들은 미국으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다. 취임과 함께 멕시코와 접한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첫 행정명령을 발표했는데, 선거공약이었지만 엉뚱하고 실현 가능성이 작아 보였기 때문에 설마 했던 일을 취임 즉시 현실화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며칠 뒤 아랍 7개국 국민을 입국 금지하는 반(反)이민 행정명령으로 세계가 다시 발칵 뒤집혔다.
인터넷으로 그 소식을 접했을 때 바로 갓 결혼한 그 신혼부부가 떠올랐다. 내년 방학 때 터키에 돌아가 다시 한 번 결혼식을 치르겠다고 했는데 그들의 계획을 실현할 수 있을까? 그런 다음, 미국으로 무사히 귀국을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온갖 난관을 이기고 결혼한 그들이기에 더 걱정이 되었다.
국제학회에서 만나 친구가 된 싱가포르 출신 비구니스님도 놀라고 당황하여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자신이 비록 미국대학의 교수 신분이지만 만약 출국했다면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로 미국 입국을 거부당했을지도 모른다는 그의 글을 보면서 그가 느낀 위기감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내일 당장 가족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고 일하던 일터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해졌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국제 정치에서 자국 중심주의는 동맹과 연대의 구호 아래서도 엄연하게 작용했던 원리였으므로 ‘미국 우선주의’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실행하고 있는 ‘미국 우선주의’는 세계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19세기 이래 세계는 하나의 단위가 되었다. 한 지역의 문제가 다른 지역의 문제로 이전되고 있다. 식량문제가 그렇고 기후변화가 그렇다. 다국적기업과 국제 무역 역시 단일한 것으로서의 세계라는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과거와 달리 한 지역의 문제일지라도 지역 정치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아졌다.
불교가 말하는 연기적 관계가 이처럼 뚜렷해진 세상에서 한 국가의, 그것도 세계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국가의 자국 중심주의는 결국 그들의 이익마저 지키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혐오와 증오가 이제 아무 제약 없이 노골적으로 표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난 테러와 무차별 총기 난사는 개인적 차원에서든 국가적 차원에서든 억압과 증오의 결과들이지만, 국지적으로, 불법적으로 이루어졌던 일들이 만약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합법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문화와 인종, 종교의 차이가 차별과 억압, 증오를 만든다면 파국은 불가피하지 않은가.
우리 안에도 차별과 억압, 증오가 해소되지 못하고 더욱 이기적인 양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짙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차별과 억압, 증오를 사랑과 자비로 바꾸는 일은 이 시대의 종교에 맡긴 사명이지만 한국종교 역시 종교 내부뿐 아니라 한국사회에 차별과 억압, 증오를 키우는 데 더 기여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볼 일이다.
명법 스님 은유와마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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