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본문은 내가 목회 일선에서 물러나게 될 때 설교하려고 아껴두는 본문이다. 그러다가 지난해 지역의 한 교회에서 담임목사 이 취임식 설교 부탁을 받고 그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했던 적이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 본문은 나의 은퇴 설교로 유효하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사사시대 말기에 선지자겸 사사이며 제사장이었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는 통치자였다.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 크게 쓰임 받아서 이스라엘을 모욕하며 침략해온 암몬의 침략을 물리치고 위대한 승리를 가져온다. 그러나 백성들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통치보다는 이방 나라들의 왕정을 보면서 사무엘에게 가시적 왕을 요구하는 신정 통치를 거부하는 불신앙의 길에 들어선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게 하심으로 베냐민 지파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게 된다. 그 자리에서 사무엘은 은퇴를 선언하며 고별설교를 하게 된다. 물론 선지자나 사사의 직은 은퇴를 할 성질은 아니지만, 한 나라 안에 두 개의 리더십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때문에 통치자로서의 리더십은 사울에게 이양을 해야만 했다.
그 장면을 머리에 그려보면 이제 사무엘 자신은 머리가 허옇게 된 노인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장성한 그의 아들들이 서있다. 새로 기름 부어 세워진 왕 사울도 그 앞에 서 있다. 그리고 그는 백성들에게 외친다. “나는 어려서부터 여러분 앞에 출입한 사람입니다.
오늘 내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 앞과 기름부음을 받은 새로운 왕 앞에서 증거 하십시오. 내가 뉘 소를 취한 적이 있습니까? 뉘 나귀를 취한 적이 있습니까? 누굴 속인 적이 있습니까? 누구를 압제 했습니까? 누구의 뇌물을 받고 눈이 흐려져서 잘못된 결정을 내린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말씀하십시오. 내가 다 갚아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백성들이 일제히 외친다. “아닙니다. 당신은 우리를 속이지도 아니하였고 압제하지도 아니하였고 뉘 손에서 아무것도 불의하게 취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왕 앞에서 증거할 수 있습니까?” “네 우리가 하나님과 왕 앞에서 증거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가? 사무엘은 자신의 사역의 평가를 그가 이룬 업적으로 평가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이 이룬 공적으로 평가 받으려 하면 자타가 인정하는 엄청난 치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사역을 업적이 아닌 자신의 삶으로 평가받고 싶어 한다. 자신의 흰머리 앞에 부끄럽지 않은 깨끗한 삶으로 평가받는 모습은 이 땅에 모든 지도자들이 교훈으로 가슴에 담아야 할 삶이 아니겠는가.
나는 신학생 시절부터 이 본문이 맘에 들어서 나의 은퇴 설교 본문으로 일찌감치 정해 놓고 목회를 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살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이 본문으로 설교해야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어느새 불혹을 넘어 이순의 나이를 살고 있다.
머리도 희어졌고 아이들도 장성해서 내 설교를 듣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부끄러운 것뿐이다. 흰머리는 염색으로 감추었고 깨끗한 삶보다는 ‘내가 누구인데’하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는 자신을 보고는 한다. 오늘도 모세의 기도를 빌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알게 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반종원 수원침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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