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국가나 조직체들과의 허구 많은 정치적 대화나 국제적 평화회담의 가치와 의미와 교훈을 되돌아볼 때, 대부분이 약속 불이행으로 무효화 결과를 지난 1세기 동안 비일비재하게 보아왔다. 남북 지도자들의 이번 판문점 회담 선언으로 많은 국민들의 마음이 들떠 있는 지금 온 국민은 냉엄하고 진솔하게 오늘의 우리 인류가 나아가는 길을 이탈하지 말아야 하겠다.
만일 북한이 남한처럼 자유와 정의와 진실이 살아있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였다면, 지금 남한보다 훨씬 더 잘 살 것이며, 패전국 일본 수준을 넘는 경제발전을 쉽게 이룩하여, 대만이나 싱가포르와 어깨를 나란히 할 뿐 아니라, 1950년 10월에서야 정부수립을 선포한 오늘의 중국이 아직 약체를 면치 못하던 시절, 동명고강(東明故疆)의 동북 3성 회복, 관리도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마치, 승전국에 들어있는 남한이 패전국 일본이 자위대 3만여 명의 비무장 호기에 대마도 회복 관리를 소홀히 한 것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만시지탄이 있으나, 지금의 몽골처럼, 자유부재 사회제도를 신속히 탈피하는 철저한 탈공산주의화(脫共産主義化) 정책 실천만이 시급한 경제발전은 물론, 북한 현대화의 연착륙이 가능할 것이다.
북한이 지금이라도 인민들의 경제활동 자유를 보장한다면, 2~3년 안에 국민소득과 국가 경제 지수가 200~300% 발전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을 것이며, 살벌한 사회 분위기도 사라지고, 훈훈한 인간 대동체(大洞)의 본 모습이 살아나, 남한과의 통일이나 세계와의 대화나 회담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서울 불바다니, 평양 잿더미니, 핵실험이니, 대륙 간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니, 북폭이니, 하는 무력 폭언의 홍수가 일시 겨우 멈춘 지금, 우리뿐 아니라 미국과 전 세계가 이번 판문점 회담 선언의 비핵화나 평화통일 거론을 불신하는 것은 당연하며, 의심을 못 버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니, 이 불신을 불식시켜야 하는 지금의 북한 지도자들의 고충과 노력에 우리는 이해와 동정의 협력까지 포기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1953년 3월 초, 소련 스탈린이 죽자, 소련의 16개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에는 민주화의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였지만, 프라하에서는 포성과 화염 속에서, 겨우 너더댓 살밖에 안 되는 어린 아이들이, 부모님들의 손에 등이 떠밀려서, 울면서 서로서로 고사리 같은 어린 손들을 맞잡고 집을 나서고 있었다.
이 어린 아이들 앞가슴 옷자락에 붙인 헝겊 조각에 적힌 글들이 어렵게도 바깥세상, 로마에까지 전해지자, 자유 세계인들은 슬픔과 눈물을 금치 못하였다. 당시, 한국 시골에서 국민학교를 갓 졸업한 14세 전후의 가난한 우리들에게까지도 알려지던 그 헝겊 조각 통신이 전하는 눈물겨운 소식은 다음과 같았다.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들을 만나거든, 우선 눈물을 닦아주시고, 너무 울지 않도록 울음을 그치게 달래주십시오! 허기진 배를 채우게 먹을 것을 주십시오! 제발, 부탁합니다! 이 아이들의 부모는 지금 우리 국민들의 자유와 정의와 진리를 위해서 소련 공산당원들과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총에 맞아 피 흘리며 죽어가는 부모들이 싸움터에서 알리는 유일한 최후의 부탁입니다!”
그러나 프라하의 봄바람은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소련의 무자비한 바르샤바 조약 공산군 20여만 명에 의하여, 피바다를 이루며 끝을 맺었으나, 1978년 10월 폴란드 공산권 출신의 보이티야(Karol Wojtyła) 추기경이, ‘로마 교황 요한바오로 2세’로 즉위하면서, 폴란드를 시작으로 무신론 공산주의 소련이 와해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전 유럽이 민주화의 물결로 경제번영의 길에 매진하고 있다.
1970년대 초, 월남과 월맹의 동남아 10년 전쟁 말기에, 거듭 반복되던 대화와 회담에 모두가 지쳐 있을 때, ‘파리 평화 협정’ 발표는 전 세계를 환영과 기쁨으로 열광케 하였었으나, 美蘇英中佛, 5개 강대국의 입회보증도 아무 소용이 없이, 월남은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진 나라가 되었다. 우리가 반드시 참고할 역사적 교훈을 주고 있다.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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