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어주는 남자] 샤갈의 닭

‘샤갈 풍’ 詩語에 담긴 일상의 불안과 위안

샤갈의 닭

               -  조현석

날갯짓 한 번에 바람 타고 머문 곳

늘 밝은 하루가 펼쳐지는 하이티

무지개 구름이 피어나는 아침

알록달록 말로 변신한 닭의 울음소리

처음 듣는 하늘을 찢을 듯한 소리

상서로운 소리여야 더욱더 좋지

황홀한 천국의 불안은 늘 곁에 있어

『검은 눈 자작나무』, 문학수첩, 2018

그림의 제목을 모르더라도 그것이 누구의 작품인지를 단박에 알아맞힐 수 있는 게 샤갈의 그림일 것이다. 피카소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딱 보면 그의 그림이라는 걸 쉽사리 알 수 있다. 이렇듯 어떤 그림들이 작가 특유의 분위기와 정취를 고유하게 드러내 감상자의 인상에 깊이 박힐 때 우리는 그것을 ‘풍(風)’이라 말한다. ‘샤갈 풍’이는 말은 동화적이고 신비한 세계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뜻으로 자주 쓰인다. 샤갈의 그림은 무중력의 세계를 보는듯하다. 사람과 말과 수탉이 푸른빛의 화폭 속에서 붕붕 떠다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절로 아늑해진다. 메마르고 척박한 세계일수록 샤갈의 그림에서 따뜻한 위안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조현석 시인의 시 <샤갈의 닭>은 샤갈의 그림 여러 편을 한 번에 보는 듯하다. 그의 시에 깔린 분위기를 ‘샤갈 풍’이라 해도 무방하겠지만 뭔가 다른 상상의 고유한 결이 느껴져 곱씹어 읽게 된다. ‘풍’이라는 것이 흉내 수준에 머물게 된다면 진부한 인상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보다 한발 앞선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상상력의 밀도와 스케일일 것이다.

상상력은 과장(誇張)이 아니다. 큰 것 속에서 작은 것을, 작은 것 속에서 큰 것을 발견해내는 절묘한 시선이 상상력이다. 작은 ‘날갯짓’ 한번으로 ‘바람’을 타고 오르는 상상의 도약이 없다면 <샤갈의 닭>은 밋밋했을 것이다. 여기에 “알록달록 말로 변신한 닭의 울음소리”라는 공감각적 표현이 신비감과 입체감을 부여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동화적인 세계를 꿈꾸게 만든다. “처음 듣는 하늘을 찢을 듯한 소리”와 함께 우리 앞에 상서롭게 나타난 그곳은 다름 아닌 ‘유토피아’일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곳을 ‘황홀한 천국의 불안’이라는 역설로 설명한다. 조현석 시인의 시가 갖는 모종의 울림은 이 역설에 있다. 시어(詩語)의 역설이 억지가 아닌 감동으로 불쑥 다가올 때 시의 매력이 생긴다. ‘황홀’만 있는 천국은 무료하다. 그 무료함에 생기를 불어 넣는 것이 ‘불안’이다. 불안은 부정적 느낌이 아니다. 황홀을 더욱 황홀답게 만드는 실존의 활기와 기분이 불안이다. 하이데거는 어떤 가치로도 환원될 수 없는 실존의 유일무이한 ‘기분’을 불안이라고 했다. 천국은 불안이 만든 황홀이고, 황홀이 거느리는 불안이다. 하여 우리는 불안의 기분으로 일상의 남루(襤褸)를 도약해야 한다. 삶도, 사랑도 모두 ‘황홀한 천국의 불안’이다.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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