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몰라… 가족과도 말 못해요”
올해 문재인 대통령이 “고려인 1세대는 모두 애국자이고 독립유공자”라고 밝혔다. 고려인은 1920년대 스탈린 치하 소련 연해주 등지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조선인 약 17만 명의 후손이다. 지난 4월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거주 고려인은 6만4천여 명이다. 그러나 1만여 명에 이르는 고려인 자녀는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고 기타 사유로 체류하는 이들을 포함하면 8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대통령은 고려인을 ‘독립유공자 후예’라고 했지만, 현실은 그저 ‘검은 머리 외국인’일 뿐이다. 특히 재외동포법상 ‘동포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19살 미만인 고려인 4세는 동포가 아니라 ‘외국인’에 해당돼 교육 사각지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에 도내 고려인 학생들의 열악한 교육환경과 정주 여건 실태에 대해 진단해 본다. 편집자주
#1. 한국에 온 지 4년이 됐지만 여전히 한국어가 어려워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워요.(A양ㆍ10세)
#2. 한국어를 몰라 무섭고 더 힘들어요. 그래서 왕따 같아요. 할머니와 엄마ㆍ아빠도 한국말이 서툴러 가족끼리 대화가 안됩니다.(B군ㆍ14세)
최근 안산, 시흥, 화성 등 경기도 내 지역을 중심으로 고려인 4세 학생들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의사소통’을 꼽았다.
1일 안산시ㆍ안산고려인지원센터에 따르면 국내 최대 고려인 밀집지역인 안산에는 고려인 1만2천여 명이 살고 있다. 안산 원곡초교에는 전체 학생 540명 중 러시아ㆍ중앙아시아 출신 학생이 150명, 인근 석호초교에는 전교생 884명 중 140명의 고려인 학생이 재학 중이다. 선일초교는 우즈베키스탄 출신만 112명, 러시아 71명이 다니고 있다.
그러나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고려인 학생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우리말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한국말을 전혀 못하거나 자모음 해독은 하지만 뜻을 알지 못하는 학생도 많다. 또 쓰기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등 학생들마다 한국어 능력의 개인차가 크다.
언어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고려인 학생 대부분은 부모를 따라 중도 입국한 자녀들로, 고려인 3세대인 엄마, 아빠도 한국말이 서툰데다 장시간 일용직 근무로 인해 한국말 지도가 어려운 실정이다. 심지어 고려인 2세대 할머니와 엄마, 아빠와 10대 고려인 자녀들 간 대화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 같은 고려인 4세들의 언어문제는 학교 부적응, 낮은 학업성취도, 진로ㆍ진학 문제 등 다양한 교육문제로 연결돼 낮은 취학률과 높은 학업중도 포기로 이어져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안산 원곡동과 사동 일대에선 고려인 학생 대상 한국어를 교습하는 월 45~50만 원 상당의 고액 사설 고려인학교가 성업 중이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 관계자는 “최근 국적ㆍ지역별로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독립국가연합(CIS) 출신이 급증하고 있지만 현재 재외동포법상 외국인으로 분류돼 있는 고려인 4세 학생들만을 위한 한국어교육 등의 교과ㆍ교육 정책은 형평성에 있어 아직까지는 시기상조”라고 전했다.
구재원ㆍ강현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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