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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사각지대 놓인 다세대주택] 2. 안산 중개보조원 자매의 사기극
사회 법 사각지대 놓인 다세대주택

[법 사각지대 놓인 다세대주택] 2. 안산 중개보조원 자매의 사기극

이중계약… 신고대상 아닌 오피스텔도 먹잇감

“이중계약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한 거죠.”

안산에 사는 70대 A씨는 일평생 근검절약한 삶을 살았다. 1997년 우리나라를 엄습한 IMF 여파에 직장을 그만두고,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며 가족들의 생계를 묵묵히 책임졌다. 그렇게 반평생 어렵게 모은 목돈으로, 2012년 안산시 단원구의 오피스텔을 분양받았다. 노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편안한 노후생활을 그리던 그의 꿈은 공인중개사 중개보조원으로 근무한 B씨에 의해 6년 만에 산산조각났다. 중개보조원 B씨가 임대인 A씨에게 월세계약을, 임차인에게 전세계약을 맺어 보증금 차액을 가로채는 ‘전ㆍ월세 이중계약’ 사기극을 벌였기 때문이다.

B씨는 계약서 작성 당시 A씨에게 “월세계약을 원하는 임차인이 급한 일이 생겨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갔으니 그냥 사인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A씨는 큰 의심 없이 중개보조원의 말을 믿고 계약서에 서명했다.

A씨의 가족은 “작년 말부터 오피스텔의 월세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B씨의 ‘이중계약’ 사기 행각을 알게 됐다”며 “A씨가 10여 년 넘게 경비원 생활을 하며 모은 돈으로 분양받은 오피스텔이라 더 속상하다”고 하소연했다.

이 오피스텔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신혼부부의 사정도 A씨와 다르지 않았다. 부모에게 8천만 원을 지원받아 전세계약을 맺은 이 부부는 실제 집주인 대신 B씨의 자매인 중개보조원 C씨가 내세운 가짜 집주인과 월세로 둔갑한 계약을 맺었다. A씨와 비슷한 수법으로 ‘이중계약’ 사기를 당한 것이다.

올해 3월 안산시를 집어삼킨 40대 자매의 오피스텔(265실) 전ㆍ월세 사기행각은 대담했다. 현행법상 부동산 매매거래와 달리 실거래 신고 의무사항이 아닌 전ㆍ월세의 법 사각지대를 교묘히 파고든 이 자매에게 당한 피해자만 177명, 피해 금액만 60억 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 자매를 상습사기 등 혐의로 구속했다.

공인중개사 중개보조원으로 근무한 이 자매는 위임장 없이 허위 계약서로 임차인과 전세계약을 체결한 뒤 집주인에게 월세계약을 맺었다고 속여 보증금을 가로챘다. 임차인 대부분이 작성한 계약서에 적혀 있던 연락처 상당수도 없는 번호거나 대포폰 번호였다.

이들은 또 임차인에게 임대인의 계좌로 전세금을 입금하도록 유도한 뒤 임대인에게 “금액이 잘못 들어갔으니 중계업자의 계좌로 금액을 다시 보내라”는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더욱이 임차인 상당수가 위조한 위임장을 믿고, 집주인의 계좌가 아닌 중개사 계좌로 보증금을 이체하며 자매의 먹잇감이 됐다.

안산시 관계자는 “사건 당시 법률자문 TF팀을 운영하고, 공인중계사법 위반 사항에 대해 행정처분을 했다”면서 “현행법상 오피스텔의 경우 전ㆍ월세 계약시 신고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행정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정민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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