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내 한마음 차분하면 풀무는 쇠를 녹인다

입춘(立春)이 지났다. 집에 있는 작은 화단에 살포시 나오는 풀잎들을 보노라면, 생명이 약동하는 모습에 마음이 밝아진다. 다른 한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곳곳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 주변을 서성이고 있음을 느낀다.

대학가에서는 우리나라에 유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들이 방학 동안 중국에 갔다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있지 않을까 염려한다. 다중 모임을 최소화하여 바이러스 확산을 막으려고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졸업식과 입학식 취소 및 축소 그리고 개강 연기까지 고려되고 있다. 이처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각종 예방 대책에 정부와 모든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의학사 전문가가 아닌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인류는 이런 신종 바이러스들을 역사적으로 경험해왔다. 즉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차분히 대처하고 주의 사항들을 잘 지키면, 이를 이겨내는 데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언론의 관심을 받는 동안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간의 용호상박(龍虎相搏)하는 모습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다소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이외에 4월 총선 관련 정치권 뉴스들이 언론의 주요 관심인 것도 또 다른 탓일 것이다.

나는 우리 국민이 최근 언론을 장식하는 정치계와 법조계 이슈들을 통해 무엇을 느낄까 생각한다. 국가고시합격을 하거나 공부를 많이 하거나 정치계에 발을 들이거나 해서 이른바 출세를 한 분들 가운데, 우리가 존경할 만한 분들이 몇 분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한다. 출세를 한 분들 가운데서 존경할 만한 분들을 찾기 쉽지 않은 것 같아 다소 슬픈 생각이 든다. 물론 존경할 만한 분들이 우리 주변에 없지 않다. 다만, 언론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분들 가운데 이런 분들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언론이 관심을 두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여론이 관심을 갖는 것이다. 존경할 만한 분에 대해 여론이 관심이 없으니, 언론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존경할 만한 분들을 알고 존경하고 살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한 일이다.

나는 교육자로서 현재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존경받을 만한 지도자로 길러내는 교육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 물어본다. 어떤 길을 보여주고 어떤 길을 가라고 해야 하는지 스스로 물어본다. 나는 우리 학생들이 출세를 위한 길을 가든,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가든, 다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학생들이 어떤 길을 가든 정성을 다하며 큰 눈을 가지고 깊고 차분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되길 바란다.

지난겨울에 몇 권 읽은 책 가운데 하나가 『채근담 하룻말』(박영률 옮김)이다. 이 책은 잘 만든 책이다. 한글 번역도 인상 깊게 아름답고 좋았다. 옮긴이는 이 책을 하루에 한쪽만 읽으라고 권한다. 나는 옮긴이의 이 권유가 ‘이 글이 곧 너의 삶이 되게 하라’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우리말 번역과 내용에 이끌려 번역자의 권유대로 읽지 못하고 아침저녁으로 읽으며 사흘 만에 읽어버렸다.

오늘 이 책을 다시 꺼내 펼쳐 읽은 부분 가운데 다음 이야기가 인상 깊다. “힘 있는 자들은 서로 머리를 쳐들고, 영웅들은 호랑이처럼 다투니, 냉정하게 이들을 보면, 개미가 누린내에 모여들고, 파리가 피 냄새를 다툼이라. ‘맞네, 틀리네’ 하며 벌떼처럼 일어나고, ‘얻었네, 잃었네’ 하며 고슴도치 바늘처럼 성을 내도, 내 한마음 차분하면, 풀무는 쇠를 녹이고, 끓는 물이 눈을 녹인다.” 나는 세상 걱정에 위로 올라가는 열을 내리고 더욱 차분해지자 다짐한다.

김원명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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