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온 나라가 코로나 전염병으로 진통을 겪는 동안에도 들과 산의 꽃들은 피어나고 나무의 가지들은 초록색 연필심 같은 여린새싹 잎들을 줄줄이 밀어낸다. 한치의 어김이 없이 대자연의 질서 앞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봄의 생명체들 앞에서 경이로운 마음마저 든다. 그렇게 생소했던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지금, 우리들의 그 잃어버린 평범한 일상들도 봄꽃이 다 지기 전에 서둘러 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저녁나절 벚꽃길 따라 산책을 하던 중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었다. “아서 아서 꽃이 떨어지면 슬퍼져그냥 이 길을 지나가심한 바람나는 두려워 떨고 있어이렇게 부탁할게….” 가수 예민이 부른 노래 <꽃이 바람에게 전하는 말>이다. 꽃잎이 바람에 떨어질까 봐 꽃이 바람에게 건네는 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심신이 지쳐 있을 우리 모두를 위해 봄꽃들이 바람에게 건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춘천에 사는 동기신부 하나는 23년 신부 생활 동안 이런 시간은 처음이라며, 힘들지만 자숙하는 시간을 보낸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자숙이라 함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삼가고 조심한다는 말일 건데 무엇을 자숙한다는 말인가? 감염에 노출될까 봐 사회적 거리두기를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는 의미로 들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간의 삶을 되돌아보고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정말 지금의 사태에서 되돌아봐야 할 우리의 공동선적 책임은 없는 걸까?

블로그를 통해 도는 한 신앙인의 글이지인의 카톡을 통해내게도 전해졌다. 글은 참회의 기도로 시작하고 있었다. “주님, 코로나19로 인해 불과 한 달 새 우리의 생활 모든 것이 너무나 많이 바뀌었습니다. 요즘 상황을 보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분명히 있음을 보게 하시고, 우리가 잘 못 가고 있었던 길을 반성하며 다시금 주님 앞에 바르게 서는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어서, 한국인 입국을 막는 나라가 많아지는 상황이, 지나치게 해외여행을 다니는 우리에게 절제하라는 일종의 사인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또 마스크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이 된 건, 그동안 너무 많이 무책임한 말을 내뱉고 거짓 뉴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퍼 날랐던 우리에게 조금 더 침묵하며 살라는 뜻인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모이는 교회를 막으시는 것은, 그동안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은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모이는 일에만 힘쓴 것에 대한 벌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내 삶에 군더더기는 없는지 살피게 된다.

스위스 화폐 100스위스프랑에는 스위스의 유명한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초상이 있다. 그의 예술은 <더함>의 예술이 아닌 <뺌>의 예술로 유명하다. 스케치하고 물감을 입히고 덧칠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예술의 틀이라고 한다면, 그의 예술은 오히려 덧칠함과 입힘을 뺌으로써 인간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그 때문에 그의 작품은 대부분 뼈에 살가죽만 살짝 입혀놓은 것처럼 마른 형상이다.

가볍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살 수는 없을까? 그러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에 힘과 에너지를 쏟고, 지쳐 힘들어하며,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고 거기에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간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은 어쩌면 더 많은 것을 가지는 일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비워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유례없는 전염병으로 삶의 무게감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느껴지는 요즘, 겸허히 나에게 묻는다. 지나온 삶이 혹시 불필요한 것의 더함은 아니었는지.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그랬던 것처럼 삶의 군더더기를 빼면서 주어지는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다듬는 삶의 조각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힘든 이 시기, 사회적 거리두기의 적극적인 실천과 함께 나를 짓누르는 내 삶의 불필요한 물거품은 없었는지도 살피면서 내 인생의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해 보는 건 어떨까?

김창해 천주교 수원교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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