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햇살에 초록빛이 어우러진 시선 끝의 광교산 자락을 바라보면서 우리나라의 산천은 모양새가 단아하고 멋스러움을 갖춘 한옥의 아름다운 자태를 품을 수 있는 형세를 갖추었고 이 땅에서 살아왔던 우리의 조상은 이러한 모습을 주거하는 집과 삶의 인격을 갖추려는 근원으로 삼고자 노력하였다는 상념이 스친다.
인간의 역사는 발전과 후퇴라는 수레바퀴를 굴리면서 인재를 찾아내고 공동의 문화를 만들어가며 서로 이익을 확대하고자 노력했다. 만약 우리가 아닌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사유가 현재에 주류의 이념으로 자리 잡고 있고 이것을 최상의 가치라고 의미를 부여한다면 우리에게 행복과 안녕이라는 일상의 모습이 얼마나 존재할 것인가.
인간들은 대부분이 속박과 억압을 싫어하고 자유와 안락한 삶을 추구한다. 이러한 자유의 기초에 존재하고 있는 우리들의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지켜야 하는 약속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 이해가 필요하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모든 대중들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현실에서의 이념이고 이것을 대외적으로 나타내는 상징성은 ‘화합’이다. 화합이란 말이 지닌 의미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이지만, 실제로 화합을 실현하고자 하였을 때에 실천 역시 간단하지 않다. 두·세 명이 함께 생활하면서도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인간의 삶인데 공동체 생활을 한다면 갈등이 발생할 여부는 매우 커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현재의 삶을 지속하고 더 발전시키려고 화합을 이루어야 한다. 화합의 의미를 사회적인 윤리로 풀어서 설명한다면 같은 삶의 터전에서 정해진 규정을 따르고 규정을 서로 인식하며 지키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화합을 실현하는 방법은 규정에 알맞은 행동을 일상에서 실천하고, 또한 화합은 이치에 알맞은 규정을 기반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화합은 우리의 삶에서 선택의 일상이 아닌 필수의 문제라고 인식하여야 한다.
지금은 장마가 우리나라와 주변국에 걸쳐서 많은 비를 뿌렸고 남쪽 지방에 큰 피해를 발생시켰으며,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은 피해가 많이 일어났음을 보도를 통하여 접할 수 있다. 자연의 세계에서도 혼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끼친다는 이치이다. 이처럼 인간세계에도 나와 다른 사람이 화합을 이루지 못하면 국가적 재앙이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살펴볼 수 있진 않은가.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컸던 동족상잔의 6·25전쟁이 발발 한지도 70년이다. 군인과 경찰 민간인을 포함하여 130만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나, 지금까지도 서로 이념의 가치를 따라서 갈등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국가의 위기는 외부에서 유입되는 측면보다는 내부 구성원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서로 반목하는 화합을 깨트리는 행위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국가를 이끌어가는 지식인과 국민 다수가 화합하고, 가장 약한 사람들까지도 배려하며 공정하게 국가의 법이 평등하게 작용한다면 화합에 점차로 다가갈 수 있다.
지금도 우리의 눈앞에는 정치적 갈등, 성 평등의 갈등, 분배의 갈등과 세대 간의 갈등이 선을 넘어선 모습이다. 국가에 위기가 다가왔을 때에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전쟁의 포화 속에 스러져갔던 선배의 영령들이나, 국가의 발전과 민주화를 위하여 노력하였던 선지자나, 또는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추구하며 개인의 영예보다 사회와 이웃을 위해 희생하였던 많은 사람은 우리의 이러한 현실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분들을 기억해야 하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에 가슴 깊이 감사드리며 대중의 화합을 추구해야 한다. 국가는 이 순간에도 역동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우리는 다시 서로 마음으로 감싸주고 상처를 안아주는 삶을 실천하였으면 한다.
세영스님 수원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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