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뭉크는 무엇에 절규했을까?

저물 무렵의 스산한 공기, 피오르드 해안가, 도시가 한눈에 보이는 다리 위, 핏빛 하늘과 불타오르는 구름 그리고 검푸른 도시, 공포에 떨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얼굴에 양손을 댄 채 비명을 지르는 듯 서 있는 정체불명의 민머리. 설명만 들어도 알 만한 이 그림의 제목은 <절규>이다. 뭉크는 이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로, 당시 “자연을 뚫고 나오는 헤아릴 수 없이 거대하고 그치지 않을 끝없는 절규를 느꼈다”고 했다.

얼핏 들으면 절망적이었던 자신의 내면을 담은 듯하나 후대는 그의 작품을 인간 이성의 불완전함과 인류의 비극을 예견했던 아이콘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가 느꼈던 자연의 그 거대하고 그치지 않을 것 같은 절규란 무엇이었을까? 예상 밖 빗나간 역대급 무더위 전망 뒤로 쏟아진, 유례없는 기록적 장맛비는 자연을 절규하게 했고 사람도 절규하게 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2020년 장마는 그 기간과 강수량에서 모두 역대급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평균 장마 기간은 6월 말부터 7월 말까지 약 32일이고 이 기간에 내리는 장맛비는 400~650㎜ 수준이다. 하지만 이번 장마는 시간당 50㎜에서 최상 120㎜가 넘는 물폭탄을 연이어 쏟아부었다. 예년 같으면 장마철 내내 내릴 비가 며칠 새 한꺼번에 쏟아진 셈이다. 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하천 수위가 급격히 오르면서 강의 제방이 붕괴되고 주택과 농경지가 물에 잠기는 등 곳곳에 비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장기간의 집중호우로 약해진 지반은 산사태로 이어지면서 이에 따른 피해도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번 비로 벌써 31명이 숨졌고 11명이 실종됐다. 공식 집계된 이재민만 해도 7천 명에 육박한다. 설상가상으로 지금까지 온 비에 추가로 또 많은 비가 예보되어 있어 걱정이 크다. 뭉크의 그림 <절규>가 겹치는 이유다. 이러한 기후 이변이 물론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주변 중국과 일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기상청은 이번 기록적인 장맛비의 원인으로 지구 온난화를 꼽고 있다. 기온이 낮아야 하는 북쪽 시베리아 지역의 기온이 고온으로 바뀌면서 한반도 상공의 기압에 영향을 미치고 이러한 조건이 결국 한반도 내 기상 이변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장마가 끝나려면 따뜻하고 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장마전선을 밀어야 하는데 중간의 찬 공기 때문에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 한 언론사에서, 현재의 지구촌 위기상황을 세 개의 파도로 표현했다는 해외언론 한 토막을 소개했다. 한 개의 파도는 코로나 파도이고 또 한 개의 파도는 경제위기 파도였다. 마지막 파도는 가장 거센 파도로서 기후위기 파도였다. 아무리 철저한 기상재난 대비책을 세워놓는다 해도 지구 온난화를 무디게 할 우리의 살 떨리는 실천이 아닌 다음에야 앞으로 변화무상하게 가속화 될 기후재난을 막을 길은 막막해 보인다. 지구 온난화에 힘을 싣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 한 구멍 뚫린 하늘을 원망하는 것은 비 피해를 그치게 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같은 국가재난이 반복되지 않도록 실천적인 대안이 필요해 보인다. 피해지역뿐 아니라 이재민들의 구멍 난 마음까지도 하루속히 복구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김창해 천주교 수원교구 신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