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은 한국불교의 최대종단이다. 한국불교사를 돌이켜볼 때 조선전기에 불교는 억압을 받아서 불교의 모든 종파가 사라졌다가, 일제강점기인 1941년에 이르러서 ‘조선불교 조계종’이 등장했고, 현재의 조계종은 이것을 계승한 것이다. 조계종의 특색 가운데 하나는 선(禪)수행에 있고, 여름철과 겨울철 안거(安居) 때마다 여러 곳에서 선승(禪僧)들이 수행에 몰두하고 있다.
조계종의 선승을 대표하는 모임에서 2010년에 『선원청규』라는 책을 발행했다. 원래 ‘선원청규’라는 것은 선수행을 하는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규정을 담은 책이고, 이는 중국의 송나라 시대에 저술된 것이다. 지금 말하는 『선원청규』는 과거의 내용을 계승하면서도 현재 상황에 맞게 다시 내용을 수정하고 보완한 것이다.
여기서는 『선원청규』의 여러 내용 가운데 보청(普請)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보청’은 사찰에서 수행하는 선승들이 균등하게 노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노동만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노동을 통해서 정신세계를 고양하는 수행의 측면도 고려한 것이다. 과거에 선수행을 강조하는 사찰에서는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기 어려웠어서 자급자족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사찰의 구성원들이 모두 나서서 노동을 통해서 먹거리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보청이 생긴 이유이다.
그런데 2010년에 간행된 『선원청규』에서는 현대의 상황에 맞춰서 보청의 의미를 확대하고 있다. 단순히 사찰에서 노동하는 것만을 보청이라고 하지 않고, 사찰 바깥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독거노인 돌보기, 곧 홀로 사는 노인을 돕는 것도 수행자가 실천해야 할 일이라고 보고 있다. 다른 예를 들면, 농촌봉사활동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농촌에 가서 봉사활동을 통해 일손을 돕고, 농촌에 사는 노인들을 부모님처럼 돌보는 일을 하는 것이다. 또 사찰에서 불교적 가치에 의거해서 생태운동을 하는 것도 보청에 속하는 것이고, 사찰에 있는 불교문화재를 널리 알리는 활동, 곧 문화재해설도 보청에 포함된다.
이처럼 보청의 범위를 확대한다면, 이는 시민의식과 만나게 된다. 시민의식은 국가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하는 공통된 생활태도 또는 견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약자를 돕고 배려하며, 자연을 보호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한국의 전통을 지키고 알리는 일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권장할 만한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이러한 시민의식이 점차로 사라지는 현상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시민의식의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선원청규』에서 제시하는 보청은 바람직한 행위를 하라고 규정하는 것만이 아니고, 그것이 바로 자신의 정신세계를 고양시키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불교에서 주장하는 형식적 내용을 수용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시민의식을 지켜가야 한다고 말할 때에 사회의 발전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의 내면세계를 풍부하게 하는 측면도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할 때 시민의식을 더욱더 고양하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병욱 불교학연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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