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스라엘은 국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코로나 방역 실패라는 오명을 받은 나라가, 이제는 방역 선진국의 대열에 서있다. 이스라엘은 현재 백신 접종률 세계 1위 국가이다. 국민 절반 이상 코로나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 지난 18일부터는 실외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코로나 백신을 직접 제조하지 않지만, 특유의 정치 외교력을 발휘해 다른 나라에 앞서 백신 확보에 성공한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아직 집단 면역을 꿈꾸며 백신 접종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이스라엘의 안정화는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저력은 이미 역사 안에서 입증됐다. 2세기 초 제2차 유다전쟁에서 패망한 이후 나라를 잃은 유다인들은 세계 각지에서 흩어져 살았지만, 그들은 어디에서 살든지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수세기가 지나 ‘시오니즘’을 앞세워 국가 재건 운동을 펼쳤고, 아랍인들의 거센 반발에도 그들 조상의 땅인 팔레스티나 지역에 1948년 국가를 설립했다. 인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줄 알았던 나라가 그 모습을 다시 드러냈으니, 이 역시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무엇이 그들을 하나로 묶어 주었을까? 그들이 가진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여러 가지 요인 중 한 가지를 꼽는다면 ‘선민(選民)’일 것이다.
‘선민’은 유다교의 선택 사상에 근거한다.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해 당신의 소유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선민은 이스라엘 신앙의 핵심이자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다.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의식에서 비롯한 유다인들의 책임감과 사명감은 남다르다.
하지만 선민의식은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분명 내부적으로 응집력을 강화하고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지만, 지나친 선민의식은 외부와의 관계 단절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확신은 우월주의라는 왜곡된 현상으로 이어졌다. 자신들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팔레스티나인을 배척하고 고립시켜 버린 것은 하나의 좋은 예가 된다.
코로나 19로 혼란스럽고 어려운 시기에 백신의 고른 분배보다는 국가의 우선적 이익과 자국민에 집중하는 미국은 이른바 현대판 선민주의로 물들어 있다. 수많은 국가가 백신을 구하고자 혈안이 됐고 각국의 외교라인은 이를 위해 가동되고 있다. 일부 언론을 통해서 보도된 바에 따르면 미국 내 백신 보급은 여유로운 상태이고 잉여 분량을 이용하는 관광 상품도 출시됐다. 아직 코로나의 공포와 위협에서 시련과 고통을 당하는 이들에게 이 소식은 공분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미국은 부와 힘을 가진 나라다. 코로나 시대에 강대국의 위상은 배가 됐다. 미국의 ‘구별된 지위’가 오용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구별은 독점적 혹은 배타적이어서는 안 되고, 포용적이면서 개방적이고 보편적이어야 한다. 선민은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고자 구별된 존재들이지, 자신만의 집단적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는 아니다. 구별은 ‘다름’이라는 결과를 만들었지만, 그 다름은 서로 도와주고 보완하며 희망을 주는 매개(媒介)가 돼야 할 것이다.
정진만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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