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제일의 절경’ 명성 관광객 꾸준... 접근성 좋아 당일치기 나들이에 최적
월미도는 인천을 상징하는 명승 중의 한 곳이다. 주소는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 월미로다. 같은 동내에 있는 자유공원에 올라 내려 다 보면 수문식 독이 있는 인천내항 오른쪽으로 울창한 숲으로 덮인 육지와 연계된 곳 인천 앞바다의 육계도가 바로 월미도다.
월미도는 섬(島)이라는 이름 그대로 하나의 작은 섬으로 육지와는 그 거리가 약 1㎞ 떨어진 곳이었다. 1920년대 초 돌축대를 쌓아 내륙과 연결됐다. 이후 간척사업으로 ‘바다가 육지가 된 경우’다. 월미도는 비록 작은 섬이었지만 지금의 인천항 제물포가 항구 역할을 제대로 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월미도가 제물포 앞에 버티고 있었기에 파도와 바람으로부터 제물포에 정박한 배들을 지켜줬다.
역사적으로는 병자호란 때 적군의 기습작전으로 조선조정의 강화도 파천길이 막혔고 왕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해야만 했다. 그러고는 치욕의 역사를 남겼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 때는 한양으로 들어가는 뱃길을 찾으러 인천에 접근한 이양선들이 입항 전 한 차례 머무르는 섬이 됐고 러일 전쟁의 첫 포성이 울린 제물포해전은 월미도 앞바다 월미해협에서 벌어졌다.
625전쟁 때는 나라의 존망이 걸린 누란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를 창출시킨 인천상륙작전 승리의 주무대가 됐다.
■즐거움 넘치는 월미도에서 아름다운 추억 만들기
60년도 더 지난 1958년, 정상급의 인기가수 심연옥과 남백송이 청춘남녀가 통화하는 형식의 노랫말로 부른 대중가요 ‘전화통신’이 크게 히트했다. 이 노랫말에는 ‘다가올 일요일은 단둘이 만나 월미도로 아베크….’라는 구절이 나온다. 6·25전쟁이 휴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그 당시에도 월미도는 멋쟁이 청춘남녀의 ‘아베크 필수코스’였음을 잘 말해 주는 대목이다. 이 노래는 지금도 ‘일요일의 남자 송해’가 진행하는 KBS 간판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에 가끔 등장한다.
월미도가 관광지로의 명성을 간직한 것은 오래다. 일제 치하, 1920년대부터 ‘월미도는 동양 제일의 절경’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실제로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즐겨 찾았다. 당시의 교통사정으로는 월미도는 매우 편안한 길이었다. 기차로 서울에서 인천역까지는 1시간40분, 당시의 인천역에서 월미도까지는 도보로 20분의 거리였다. 서울에서 오전에 출발에 월미도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기차로 귀환, 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당일치기 나들이 길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자동차의 홍수시대가 된 지금의 사정은 어떠한가. 월미도 나들이는 굳이 자가용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월미도 나들이 길은 역시 철길이다. 철길 인천역을 월미도 나들이길의 나들목으로 잡으면 아주 편안하게 ‘즐거움 넘치는 월미도 추억 만들기’를 할 수가 있다. 인천역까지는 수도권 1호선 전철이 있고 4호선도 있다. 지난해 가을에 완전히 개통된 수인선 전철까지 합치면 5천만 전 국민 절반 정도가 월미도 나들이를 쉽고 편안하게 할 수가 있다.
■월미바다열차를 타고 하늘에서 서해를 품는다
인천역에 내려 출구로 나오니 바로 눈앞이 월미바다열차를 탈 수 있는 월미바다역이다. 열차에 오르니 인(仁)하고 자(慈)한 인상의 민명숙 문화관광해설사가 다정스런 환영인사를 한다. 자신을 소개한 다음, “오늘은 매우 뜻깊은 5월15일”이라며 어머니와 함께 탑승한 초등학교 저학년쯤으로 보이는 어린이에게 물었다. “오늘 5월15일이 무슨 날이지요?” 하는 질문을 했다. 어린이는 씩씩하게 “오늘 15일이 저 생일인데요” 하는 ‘정확한 답변’에 열차 안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됐다. ‘5월15일은 스승의 날’ - 세종대왕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정했다는 해설사의 첫 해설부터 열차 안은 즐거운 분위기, 화기가 가득해졌다.
월미바다열차는 한국관광공사가 ‘한국관광 100선’으로 선정한 바 있는 인천 월미도를 순환하는 국내에서 가장 긴 도심형 관광모노레일이다. 총 운행거리 6.1㎞, 평균 시속 10㎞의 속도로 월미도를 한 바퀴 돈다. 기준소요시간 42분, 궤도 차량 2량을 1편성으로 구성해 최대 46명이 탑승할 수 있다. 월미바다열차는 지상 7m부터 최고 18m까지의 높이에서 월미도의 자연경관과 인천내항, 서해와 멀리 인천대교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특히 서해의 낙조는 오래도록 뇌리에 각인될 절경이다.
■열차 좌우 차창 밖으로 월미바다열차 8경을 감상하다
열차가 시발역 월미바다역을 출발하자 해설사는 열차 좌우 창밖을 내다보며 소상한 해설을 해 준다. 해설 대상이 월미바다열차8경인데 8경 모두 훌륭한 문화자산이다. 열차에서 내려 살펴볼 수 있는 곳은 샅샅이 살펴보기로 했다.
8경 중 제1경은 사일로벽화다. 벽화가 그려져 있는 원통형 대형건물은 1979년에 건립된 곡물저장고인 ‘사일로’이다. 열차가 시발역을 떠나 월미공원 역 도착 전에 본 그림이다. 높이가 48m로 아파트 22층과 같으며 외벽에 그려진 벽화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벽화로, 2018년 12월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그림의 내용은 한 사람의 일생을 봄, 여름, 가을, 겨울 1년 사계로 나눠서 표현했다. 차창 밖 한편으로는 바다가 전개됐고 다른 편에는 섬의 중앙 월미산이 눈으로 들어온다.
월미산은 인천상륙작전 격전지로서 반세기 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면서 자연의 숲과 야생동물의 천국이 된 소중한 산이다. 2001년 인천시민의 품으로 돌아왔고 인천시는 이곳에 산책로를 다듬는 등 자연과 역사, 전통문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문화관광공원, ‘월미공원’으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정상(108m)에 오르면 인천항과 서해, 인천국제공항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심신을 편안하게 해 주는 월미공원 산책
지난 반세기, 군부대의 주둔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차단됐던 월미도의 일부 지역이 2001년에 인천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울창한 숲으로 잘 보존돼 온 총 면적 58만8천102㎡(17만8천평)의 땅은 지금 자연과 역사, 전통문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문화관광공원, 시민들의 심신을 편안하게 해 주는 ‘월미공원’이 돼 시민들의 사랑을 크게 받고 있다. 잘 다듬어진 산책로와 공원의 중심, 월미산과 그 정상에는 인천시가지와 인천 앞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월미공원 한편에는 2007년 가을, 조선시대의 궁궐정원과 별서정원, 민간정원을 재현한 한국전통정원이 조성돼 있다. 궁궐정원으로는 부용지와 애련지, 아미산 굴뚝이 원모습 그대로 재현돼 있어 창덕궁을 걷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별서정원으로는 소쇄원과 국담원, 서석지를 볼 수 있고 민가정원인 양진당에서는 조선시대 양반가문의 생활상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재현해 놓은 민가인 초가집에서는 어린 시절에 살던 집을 떠올리게 했다. 한국전통정원 가운데 길 벽면에 새겨 놓은 월미24영(月尾24影)은 두고두고 읽어 볼만한 글귀들로 생각됐다.
[월미도번영회 장관훈 회장 “고객에는 각별한 배려... 후배들엔 꿈과 용기를”]
어느 지역이나 잘 사는 마을에는 훌륭한 민간인 지도자가 있게 마련이다. 인천에서는 월미도가 풍요롭고 잘 사는 마을로 알려졌다는데 그 중심에는 장관훈 회장이 우뚝 서 있다.
‘코로나19’라는 악마 때문에 모두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래도 관광명소인 월미도에는 탐승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먹어야만 산다’니 월미도의 식·음료 업소는 어려움을 비교적 잘 헤쳐나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올해 50세 나이, 장관훈 회장은 인천에서 초·중·고·대학까지 마쳤다는데, 월미도는 고등학교 2학년의 알바생활로부터 인연이 시작됐다. 알바생활 이후 밑바닥에서부터 한칸 한칸 사다리를 타고 올라 오늘의 위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수많은 역경을 딛고 또 딛으며 모범적인 외식업소를 이룩한 것이니 지역의 지도자로 인정돼 지역사회발전을 이끄는 그의 헌신적인 노력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지난 수년간 지역사회의 각종 축제를 잘 치러 왔는데 코로나사태로 모두가 취소되고 있는 것이 몹시 안타깝다고 전했다.
글=우촌 박재곤 / 사진=인천교통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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