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 아파트 만들 셈이냐”…아파트 동간 거리 축소에 뿔난 시민들

“지금도 앞동이랑 거리가 가까워서 이렇게 답답한데 동간 거리를 줄이겠다니…닭장 아파트를 만들겠다는 겁니까”

정부가 이달 초 아파트 동간거리 축소 방안 등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시민들의 분노가 고조되고 있다. 최근 지어지는 아파트들의 동간거리가 가까워지며, 채광ㆍ조망권ㆍ사생활 침해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이 같은 결정은 섣부른 판단이라는 지적이다.

2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지난 3일 건축법 시행령ㆍ시행규칙 개정안 등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이르면 오는 9월 이후 짓는 아파트 단지에서 동간 거리를 ‘낮은 건물의 0.5배 이상’만 이격하도록 변경된다. 다만 낮은 건물이 높은 건물의 전면(동ㆍ남ㆍ서 방향)에 있는 경우만 해당된다.

현행법상 아파트 동간 거리는 낮은 건물 높이의 0.5배 또는 후면 높은 건물 높이의 0.4배 중 먼 거리로 정해진다. 일례로 전면 건물 높이가 30m, 후면 건물 높이가 80m라면 32m(높은 건물 높이 0.4배)의 동간 거리를 둬야 하지만 법이 바뀌면 두 건물 사이의 거리를 15m까지 좁힐 수 있다. 입주민들의 채광ㆍ조망권을 고려하고 도시경관을 개선하겠다는 것인데 정작 시민들의 반응은 차갑다.

실제로 일반상업지역에 위치해 동간거리를 규제받지 않는 아파트와 저층 아파트 거주자들 사이에선 채광ㆍ조망권과 사생활 침해에 대한 불만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용인 수지구에 위치한 A 아파트. 30층(높이 85.25m)짜리 고층아파트임에도 일부 동 사이의 최단 이격 거리가 10m 내로 굉장히 짧았다. 앞ㆍ뒷동과의 거리도 가깝고 건물도 높아 정오 시간임에도 불구, 3분의 1가량 세대에는 햇빛이 비치지 않았다. 한 입주민은 “15층에 사는데도 오후 4시는 돼야 집안에 햇빛이 들어온다”며 “저층에 사는 세대들은 여름에 곰팡이도 생긴다고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동간거리가 짧은 저층 아파트의 경우에는 사생활 침해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용인 기흥구의 한 저층 아파트(높이 15m)는 동간 정면 이격 거리가 15m로 건너편 동에 사는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가까웠다. 때문에 대부분의 입주민들은 베란다 창문에 단열재를 붙이거나 블라인드를 하루 종일 쳐놓고 생활하고 있었다. 이곳에 거주하는 B씨는 “거리가 가까워 하루종일 창문을 가리고 살아야 해서 답답하다”며 “아무리 건물이 낮아도 동간 거리가 10m만 넘으면 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최근 지어지는 아파트들은 최소한의 이격거리를 두고 건설하고 있어 닭장 아파트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올해 8월 입주 예정인 수원 화서역 파크푸르지오(2천355세대ㆍ최고 46층ㆍ높이 100여m)는 짧은 동간거리(10~30m)로 입주 예정자들 사이에서 ‘창문 열고 대화할 수 있는 아파트’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이와 관련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고밀개발은 오히려 주거환경 악화의 원인이 될 것”이라며 “당장 급한 불을 끄겠다고 내놓는 대책이 패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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