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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이슈_ 벼랑 끝 반지하 사람들] “빛은 없고, 빚만 가득…저는 반지하에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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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이슈_ 벼랑 끝 반지하 사람들] “빛은 없고, 빚만 가득…저는 반지하에 삽니다”

성남시의 한 반지하주택에서 집주인이 짐을 정리하고 있다. 이 집은 윗집에서 일어난 침수로 곰팡이 등으로 엉망이 돼 공사를 앞두고 있다. 윤원규기자
성남시의 한 반지하주택에서 집주인이 짐을 정리하고 있다. 이 집은 윗집에서 일어난 침수로 곰팡이 등으로 엉망이 돼 공사를 앞두고 있다. 윤원규기자

영화 ‘기생충’. 아침엔 햇빛, 저녁엔 달빛이 가득한 밝은 정원의 집 아래,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벗어나려 해도 끝까지 발목을 잡는 ‘가난과 비극’을 조명하며 우리 사회 양극화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경기도민 100명 중 1명은 여전히 반지하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반지하 세입자들은 재건축ㆍ재개발 열풍 속에 살 자리를 잃고 있다. 이에 본보는 도내 반지하 거주 실태를 진단하고, 도시재생과 재건축ㆍ재개발로 인해 내몰릴 위기에 놓인 세입자들을 위해 당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본다.

반지하 그곳엔…“1년 내내 어둠과 곰팡이만 가득”

“1년 365일 해가 들어오지 않아요. 곰팡이도 가득하지만, 교도소에 갇혀 있는 느낌에 우울감만 깊어지네요”

지난 27일 오후 2시께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의 재개발이 추진 중인 한 다세대 주택가. 2m도 채 되지 않는 좁은 골목길을 끼고 양쪽으로 즐비하게 들어선 다세대 주택가는 마치 1980년대를 연상케 하듯 대부분 낡고 허름했다. 이곳에서 홀로 30년째 반지하 생활을 하고 있는 A씨(50대 남성)는 자신의 주거환경을 ‘교도소’에 빗대며 “볕이라도 드는 집으로 이사하는 게 평생소원”이라며 “전세금이 모자라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이자가 무서워 엄두도 내지 못한다. 빛은 없고 빚만 가득한 상황”이라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철제 대문과 계단을 지나 마주한 A씨 집은 문을 열자마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고, 후덥지근한 공기가 피부에 달라붙었다. 특히 33㎡(10평) 남짓한 집 내부는 해가 중천에 뜬 시간임에도 낮인지 밤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빛이라곤 가로ㆍ세로 30㎝ 크기의 창문으로 새어드는 반사 광선이 유일했다. 더욱이 최근 지속해서 내린 비로 집이 침수돼 방구석구석엔 곰팡이만 늘어났고, 천장 일부는 빗물에 찢겨 있는 상황이었다.

경기도 31개 시·군 반지하 통계 그래프(2020년 기준).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에 위치한 다세대 주택도 상황은 마찬가지. 이 일대 반지하에 거주하는 B씨(40대 여성)도 2주 동안 내린 비에 집 내부가 침수되면서 벽지는 곰팡이로 가득했다. 습기를 없애보고자 보일러를 간헐적으로 틀고 있지만, 어려운 살림에 보일러는 하루 한 번 돌리는 게 전부다. 더구나 B씨는 창문을 향해 소변을 보는 만취 행인은 물론, 음란행위ㆍ몰카 촬영을 하고 도주하는 등 다양한 범죄 피해까지 발생, 극심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열악한 반지하 셋방 마저 재개발로 인해 비워 줄 처지에 놓였다.이 곳 반지하는 6~8천만원 전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들의 이주비는 1천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재개발ㆍ재건축 움직임과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면서 상대적으로 집값 상승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갈곳은 막막한 실정이다.

민정자 성남 태평2-4동 재개발운동본부 대책위원장은 “최근 집값 상승 영향으로 30만원이던 태평동 일대 월세가 1.5배로 뛰어올라 많은 세입자가 오갈 데 없는 처지에 놓였다”며 “정부는 도와준다며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지만 세입자 입장에선 실효성 없는 정책에 불과하다. (정부가)직접 나서서 집값을 잡든지, 재개발로 발생한 세입자들에 대한 이주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로컬이슈팀=하지은ㆍ정민훈ㆍ김해령ㆍ김현수ㆍ김영호ㆍ최태원ㆍ노성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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