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 지속되는 가운데 마른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무더위 속에서 우리 자신의 유한한 삶에 대한 유가(儒家)적 사색을 해본다. 유가에서 바라보는 한 개인의 삶은 유한하고 일회적이다. 유가에서는 사람이 혼백(魂魄)의 기(氣)로 이뤄졌다고 본다. 혼백의 기는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지게 됐다가 사후에 소멸된다. 기가 모이면서 한 개인이 태어나고, 그 개인이 죽게 되며 모여 있던 기가 흩어지게 된다. 사람이 죽으면 가벼운 기운인 혼(魂)이 위로 올라가며 흩어지고, 죽으면 무거운 기운인 백(魄)이 땅으로 내려가 흩어져 스며든다. 그런데 조상의 일부 정기가 자손에게 전해지며 조상의 사후에도 흩어져 사라지지 않고 후손에게 존속하게 된다. 유교에서는 조상과 후손 사이에 이어져 존속하는 이 기를 통해 일종의 연속성을 인정한다. 정기를 통해 조상의 기가 후손에게 물리적으로 이어지고, 후손의 기억을 통해 조상의 정신이 후손의 정신에 새겨지며 이어진다. 죽은 조상과 살아있는 후손 사이에는 이처럼 정기와 정신을 통해 동질성이 이어진다.
제사는 살아있는 후손이 죽은 조상을 현존하는 자신 안에 불러오는 의식이다. 죽은 조상은 살아있는 후손의 기억 속에서 그리고 가슴 속에서 심리적으로 함께한다. 그런데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제사가 사라져가고 있다. 제사가 사라져가는 표면적인 이유는 종교적인 이유나 편의를 위해서일 수도 있고 다른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은 한편으로 살아있는 후손들이 그들의 기억과 가슴 속에서 죽은 조상을 지우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조상에게서 멀어지며, 그들 자신의 뿌리를 망각하게 된다. 그들의 정신은 더욱 외롭고 가난해지는 것이다.
제사가 사라져가는 내면적인 이유는 제사가 가족과 친족 사이에 불편함을 주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의 전통적인 제사 안에는 조선 후기 시대의 위계질서가 남아있다. 이것을 현대에 적용하기에는 시대가 변했다. 제사는 이제 더 이상 친족을 만나 조상을 기억하며 우의를 다지는 즐겁고 행복한 의식이 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조선 후기 위계질서 문화와 기억이 현재와 미래에 재현되는 전통적인 방식의 제사는 이어지기 어렵다. 제사의 내용과 형식을 변형해 즐거운 일이 되지 않는다면 제사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현대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시민의식 속에서 자라난 세대에게 편하고 즐거운 제사로 변화하는지에 따라 그것의 존속 여부도 결정될 것이다.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런 부모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자녀 또한 자연스런 일이다. 제사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부모와 조상에 대한 고마움의 기억이자 표현이다. 인간의 삶은 여전히 유한하고 일회적이다. 그렇지만 유한하고 일회적인 개인들도 수없이 돋아났다가 사라졌던 조상과 동일한 원기에서 발원한 것이다. 그것은 고대인들이나 현대인들 그리고 미래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사회가 현대적이고 미래적인 제사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원을 묻고 기억하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라면, 근원을 그리워하며 기억하는 것은 곧 제사다. 기억이 제사다.
김원명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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