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선바위·용인 이영미술관 등 폐관·개점휴업 속출
재정난 속 코로나 겹쳐… 관장 사비로 운영비 메꾸기도
지자체 사활 건 ‘이건희 미술관’과 대조 “특단 대책 필요”
8일 오전 11시께 찾은 과천의 선바위미술관. 지난 2004년에 문을 연 이곳은 인적없이 잡초만 무성했다. 미술관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 미술관은 설립자가 4년 전 세상을 떠난 후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폐관 절차를 밟고 있다.
때마침 이 곳을 지나던 주민 A씨(51)는 “코로나19가 유행할 때부터 문을 열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미술관이 운영될 때 이따금씩 가족과 함께 찾아 문화생활을 즐겼는데, 문을 닫으니 마음을 재충전할 곳이 사라진 듯해 서운함이 크다”고 말했다.
20년 역사의 용인 이영미술관도 재정난을 이유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이영미술관은 2005년 전혁림 화백 구순 기념 개인전 당시 故 노무현 대통령이 방문해 화제가 됐던 사립미술관으로 입지를 굳건히 다졌던 곳이다.
같은 지역에 25년 역사를 가진 마가미술관도 상황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매년 지역민을 위해 진행했던 교육 프로그램과 기획전은 올해 한 차례도 열지 못하고 있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시와 연계해 마을 주민을 위한 테마관광 부스를 운영하면서 하루 240명이 찾아올 만큼 북적였었다. 하지만 재정 악화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이어지면서 관장의 사비로 간신히 문만 열고 있는 상태다.
최영순 마가미술관 관장은 “사립미술관은 운영에 재정적 어려움이 따르는데다 코로나19로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관람료 수익마저 없어 직원들 월급을 자비로 지급하고 있다”며 “여기저기 개점휴업 소식이 들린다. 지역 사립미술관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상당수가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도내 각 지자체가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사활을 걸며 미술관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지만 정작 오래전부터 운영해온 지역 사립미술관은 무관심 속에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날 경기도에 따르면 도내 등록된 사립미술관은 지난달 기준 40곳이다. 2018년 36곳, 2019년 37곳, 2020년 39곳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사립미술관은 문화적 소산을 수집, 보존, 연구하며 전시ㆍ교육을 통해 관객과 소통이 목적이다.
지역 주민을 위한 전시뿐만 아니라 문화향유권 신장,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작가와 학예사를 길러내는 지역 문화예술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지역별로는 파주에 7곳, 용인 5곳, 가평과 남양주에는 4곳, 안산 3곳, 성남ㆍ화성ㆍ김포ㆍ광주ㆍ여주에 각 2곳이 있다. 수원ㆍ시흥ㆍ양평ㆍ과천ㆍ고양ㆍ양주ㆍ의정부에는 1곳이 있다. 특히 시립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없는 가평과 의정부에서는 사립미술관이 지역의 실질적인 문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매년 꾸준히 늘어나는 수에 비해 도내 상당수 사립미술관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등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사립미술관은 이제 ‘빛 좋은 개살구’라는 자조 섞인 말이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한 사립미술관 관계자는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상당수가 미술관을 건립한 1세대 설립자의 세대교체에 재정 악화 속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삼중고에 멍들어 가고 있다”면서 “단순히 정부와 지자체의 재정적 지원을 벗어난 사립미술관의 생존방안과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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