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어른이 돌아가시면 천이나 종이에 애도의 글씨를 써서 만장(輓章)이라 불리는 깃발을 만들었다. 세속에서는 사라졌지만 ‘절집’에서는 아직도 이러한 전통을 잇고 있다. 지난 7월22일 열반한 월주대종사 빈소가 마련된 김제 금산사에서 만장을 쓰는 울력에 동참했다. 큰스님을 기리는 이들이 추도의 마음을 담아 요청하면 부끄러운 실력이지만 붓을 들었다. 송하진 전북도지사 부인 오경진 여사 등 애통한 마음을 담은 이들의 요청으로 100여장 가까이 쓴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돌아보는 소중한 공부의 시간이 됐다.
역사 아닌 삶이 있겠는가. 그러나 큰스님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어른으로 존경받는 분들이 남긴 자취는 후인들에게는 교훈이며 등불이다.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과 대통령 훈장을 수훈한 봉선사의 운허 스님도 그런 삶을 살았다. 스님은 1972년 1월에 미리 남긴 ‘유촉(遺囑)’에서 장례를 간소하게 하고, 소장한 도서를 기증하게 하는 등 10가지 유훈을 문도들에게 당부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는 운허 스님과 더불어 동암 스님, 운경 스님 등의 유지를 이으며 전 역경원장이시며 현 조실 월운 스님과 전 월로의장 밀운 스님이 행복한 삶의 방법을 세인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어른들의 삶은 연꽃과 같다. 진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물들지 않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예토(穢土)라고 한다. 사바(娑婆)의 또 다른 표현으로 욕심과 갈등으로 가득 찬 인간세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세상에서 연꽃처럼 수행의 꽃을 피우고 향기를 선물한 분들이 바로 어른들이다.
광릉수목원 둘레길의 봉선사 경내에 자리한 연못에 핀 연꽃은 무엇 하나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연못에 활짝 핀 꽃들로 사람들에게 기쁜 마음을 선물하는 것은 물론 몸에 좋은 연꽃차 한잔의 여유를 느끼게 한다. 또한 연근(蓮根)은 반찬도 만들고 연잎은 밥을 지어서 사람들에게 이롭게 한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흔쾌히 내놓는 연꽃과 같이 우리들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운허<2022>성철<2022>월주<2022>법정 스님과 인연이 깊은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신 후에도 존경을 받는 이유도 타인(他人)을 위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낮은 곳에서 소외받는 이들을 위해 사랑을 실천했기에 지금도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아름다운 연꽃처럼 살았던 분들 덕분에 인류의 역사가 조금씩 전진했던 것이다. 명성을 남긴 위인뿐 아니라 이름을 전하지 못한 범부 가운데도 연꽃처럼 살다 간 분들이 많다.
예기치 못했던 코로나19가 지구촌을 휩쓸면서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고통을 많이 받고 있는 현실이다. 코로나19에 빠진 세상, 예토가 아니고 무엇이랴. 방역 당국에 따르면 접종 상황 등을 고려해 ‘위드(with) 코로나’를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앞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혜를 보여준 어른들의 삶에서 교훈을 발견해야 한다. ‘나’보다는 ‘우리’를 우선하며 자비와 사랑을 실천한 그분들의 가르침에서 해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모든 것을 남김없이 선물하는 연꽃처럼 살다 가신 어른들이 그리워지는 때, 우리도 어른들처럼 사랑과 자비를 실천해 하루속히 정토세계(淨土世界)를 이루길 바란다.
오봉도일 봉선사 문화원장ㆍ양주석굴암 주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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