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감로도와 현실인식

지금까지 다른 나라에서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불화(佛畵) 형식으로 ‘감로도(甘露圖)’라는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돌아가신 분을 위한 재의식 불화여서 ‘영단화’라고도 한다.

그 구성을 살펴보면 상단은 일곱 여래와 함께 자비의 화신인 관음과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든 이를 빠짐없이 구원하고자 하는 구원의 화신인 지장, 그리고 구원된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해 가는 인로보살 등이 표현돼 있다. 중단은 망자를 위한 시식단(施食壇)과 작법승중(作法僧衆)에 의한 의례(儀禮)의 모습이 나타나 있으며 그 아래의 하단은 감로도의 구성에서 가장 흥미롭고 독특한 곳으로, 중앙의 큰 아귀를 중심으로 육도 윤회상이 그려져 있다.

즉 지옥계를 상징하는 지옥의 여러 장면과 아귀계를 상징하는 아귀의 무리, 축생계를 상징하는 개나 소의 묘사와 아수라계를 상징하는 격렬한 전쟁의 장면, 또 인간세상의 현실적인 장면이 묘사된 인간계, 그리고 천인과 선인들을 묘사한 천계 등이 하단에 묘사돼 있다. 이러한 정황을 극명하게 잘 보여주는 경우로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구원을 위해 당대의 화승인 상겸에게 그리게 한 수원 용주사의 감로도를 들 수 있겠다.

하단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인간 행위의 갖가지 장면을 수식이나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를 파노라마처럼 펼쳐보이고 있다. 술 취해 싸우는 사람, 짐을 잔뜩 실은 수레에 깔려 죽는 사람, 굶어 죽는 사람, 우물에 빠진 어린아이, 의지할 곳 없는 노인, 죽어 가는 자식을 바라만 보고 있는 비정한 부모, 간통한 것을 들켜 곤욕을 치르는 사람, 전쟁 장면, 남사당의 한바탕 공연, 어린아이가 병든 아버지를 간호하는 모습 등 인간의 삶 속에서 겪는 온갖 삶의 모습이 펼쳐져 있다.

이러한 온갖 고난은 당연한 줄 알았던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고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생명을 위로하고 천도하려는 목적이다 보니 있는 그대로 모두 드러내놓아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에는 상단에 있던 지장이 다시 하단에 내려와 석장을 짚고 목련 존자와 함께 있다.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한 장한 아들, 효성의 상징인 목련 존자는 재를 올리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여러 장면을 구름으로 적절하게 나눠 배치하면서 어색함 없이 화면을 통일시키는 놀라운 구성력도 보여준다.

불화는 종교회화이고 종교회화는 이상 세계를 시각화시킨다는 점에서 상징주의적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런데 감로도는 상징주의적 성격과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사실주의적 성격이 공존하는 독특한 불화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감로도의 성격으로 인해 끊임없이 변해가는 각 시대의 풍속을 반영할 수 있었고 또한 화승(畵僧)들에게는 의궤에 따라 그대로 그리는 제한적 작업에서 벗어나 예술가로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도 제공해 줬다.

감로도를 보면서 끈질기게 지녀온 우리 민족의 창의적인 현실 극복의 힘을 느낄 수 있으며, 나아가 현재 우리가 겪는 각 분야의 난관을 우리의 삶, 우리의 현실 안에서 극복할 수 있는 귀중한 교훈을 선조들이 이미 마련해 놓았음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최성규 철학박사ㆍ한국미술연구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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