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사면초가

김규태 사회부장 kkt@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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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은 하루하루 밥상을 차리기가 두렵고, 일터로 향하는 직장인들은 자가용을 몰고 나가기가 힘겨운 요즘이다. 이상 기후 등으로 흉작이 이어지면서 채솟값 폭등 등에 따른 식자재 비용이 상승해 서민들이 즐겨 찾는 음식점에서의 가격 상승은 이미 예고된 상태다. 원자재 가격의 폭발적인 상승 역시 제조업을 필두로 나라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대다수의 산업 현장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2021년 10월을 사는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져 있다.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개월 연속 물가 안정 목표치(2%)를 넘어선 가운데 국책은행인 한국은행은 이 같은 높은 물가 오름세가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한국은행은 이달 27일 발표한 ‘우리나라와 미국의 주요 물가 동인 점검’ 보고서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점차 높아지는 가운데, 글로벌 공급 병목 현상의 국내 파급, 방역체계 개편에 따른 수요 증대 등으로 높은 물가 오름세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은은 물가상승압력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최근 물가가 큰 폭으로 오르면서 덩달아 경제고통지수가 올라갔다는 것이다. 실업률은 2.7%로 전년 동월(3.6%)보다 낮아진 반면, 9월 기준 물가는 2019년 -0.4%에서 2020년 1.0%로 오른 뒤 올해 2.5%로 연이어 상승했다. 경제고통지수(실업률+물가상승률)는 국민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을 나타내는 지표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실업률이 오르거나 물가가 상승해 지갑이 얇아지면 경제고통지수는 올라가게 된다.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2년 가까이 강타하고 있다. 자영업자는 쓰러져 나가고, 서민들은 은행 대출마저 막히며 오늘 밤 당장 내일 오전을 걱정하는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절을 살고 있다. 여기에 전방위적으로 오르는 물가는 걷기 조차 힘든 이에게서 지팡이까지 빼앗은 격이 되고 말았다.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진 대한민국이다. 초나라의 패왕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천하를 다투던 때 항우에게 마지막 운명의 날이 다가왔고, 사방에서 울려퍼지던 구슬픈 노래는 결국 시대의 영웅호걸이던 항우와 최후를 함께 했다. 지금의 대한민국 사방에도 구슬픈 노래가 들리기 시작한다. 자영업자들이, 직장인들이, 주부들이, 사업가들이 부르는 탄식의 노래말이다. 이제 결단의 시간이 다가온다. 31세에 끝내 천하를 얻지 못하고 쓰러진 항우가 될 것인가, 아님 새로운 왕조를 세우며 천하를 차지한 유방이 될 것인가는 그야말로 마지막 선택에서 갈리는 것이다. 이번 만큼은 그들의 안위와 정쟁에서 벗어나 위민(爲民ㆍ백성을 위하는 것) 사상에 기반을 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아니면 그 구슬픈 노래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김규태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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