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이 온통 ‘범’의 해였다. 판소리를 현대 팝으로 재해석해 중독적인 음악을 들려준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의 이야기다. 지난해 대한민국을 범으로 물들였던 이들은 최근 수원SK아트리움에서 <수궁가> 공연을 통해 또 한 번 이날치의 ‘범’을 보여줬다.
지난 14일 오후 진행된 공연에서 이날치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수궁가’를 노래했다. 용왕이 병이 들자 약에 쓸 토끼의 간을 구하기 위해 육지로 나온 자라가 토끼를 유인해 용궁으로 데리고 가지만 토끼가 꾀를 내어 용왕을 속이고 다시 뭍으로 살아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 것이다. 이들이 노래하는 수궁가는 전통 판소리의 주요 장면을 선별해 개성 넘치는 사운드 트랙으로 편곡했다.
이날 공연은 ‘약성가’, ‘말을 허라니, 허오리다-’, ‘범 내려온다’,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 등 이날치의 정규 1집 <수궁가>의 무대로 꾸며졌다. 밝은 조명이 빛나고 이날치는 병든 용왕을 진단하는 내용의 ‘약성가’로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용왕의 상태와 몸에 좋은 명약의 이름을 나열한는 곡으로 군더더기 없는 베이스라인과 함께 은은한 보컬로 시작됐다.
또 토끼가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둘러대는 ‘말을 허라니, 허오리다-’에 이어진 ‘신의 고향’과 ‘어류도감’, ‘좌우나졸’은 흥겨운 분위기로 고조시켰다. 이날치의 소리꾼 안이호는 “판소리라는 게 가사가 잘 들리지 않아 이해하기 힘들지만 함께 즐겨주시길 바란다”며 중간 중간 곡을 설명하기도 하며 쉬지 않고 무대를 휘저었다.
대중들이 많이 아는 ‘범 내려온다’는 특히 관객들의 몸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수궁가의 마지막 대목으로 토끼가 수궁에서 살아 나와 집으로 가다가 독수리에게 붙잡히자 자신이 다시 한 번 꾀를 내 살아남는다는 ‘의사줌치’와 용왕이 토끼를 다시 뭍으로 보내주려 하자 별주부가 울며 설득하는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는 판소리만의 합과 드럼과 베이스의 웅장함으로 신선한 사운드를 선사했다.
이날치는 이날 11곡의 음악과 두 곡의 앙코르를 끝으로 공연을 마무리했다.
공연을 본 한 관객은 “이날치의 공연을 보기 전까지 판소리는 따분하고 지루한 것으로만 생각했다”며 “이날치의 음악으로 판소리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달라졌으며 특히 위드 코로나로 오랜만에 보는 공연이라 더욱 반갑고 즐길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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