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병풍’이 들려주는 이야기…이장욱 사진전 [수수하게 연연하게]

이장욱_흔적#01_digital inkjet pigment print_35.5x20cm_2021
이장욱_흔적1, 흔적2, 쉼

일제강점기부터 6ㆍ25 전쟁을 거쳐 아픔을 관통하며 꿋꿋하게 살아냈다. 어릴 적 수놓았던 병풍에서 힘들었던 삶에 대한 설움과 한, 가족에 대한 사랑, 꿈을 느낄 수 있다. 평범한 우리 이웃이 만들어낸 이야기다. 이장욱 작가는 이러한 평범한 이야기를 놓치지 않았다. 평범한 이웃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오브제와 결합해 사진으로 담아냈다. 오는 26일까지 수원 사진공간 움에서 진행되는 <수수하게 연연하게>에서 이장욱 작가는 아스팔트로 뒤덮일 곳곳에서 사람들의 흔적과 기억을 담아냈다.

이번 전시에는 이 작가의 특별한 약속이 담겨 있다. 수원의 재개발 지역을 찍던 그는 지난 2019년 1월 당수동에서 한 할머니와 병풍을 만나게 됐다. 이 작가는 “우연히 할머니에게서 일제강점기부터 결혼해 자식을 낳고 떠나보낸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며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못해 남은 할머니의 흔적을 사진으로 기록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약속을 지켰다”고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이 작가는 할머니의 흔적을 ‘삶의 공간 집’과 ‘쉼이 있는 공간 산’으로 나눴다. 할머니가 살아계신 동안 가족과 함께 살아온 집과 돌아가신 후 머물게 된 산에 대한 이야기다.

할머니는 어릴 적 배운 수작업으로 병풍 2점을 만들고 자식과 손자들에게 수놓은 손수건을 만들었다. 이 작가는 이러한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할머니의 오브제를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할머니의 삶이 담긴 병풍과 가족을 위해 쓴 도구를 더해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는 “할머니는 힘들게 살았음에도 가족에 대한 희망과 사랑, 꿈을 놓지 않으셨다”며 “할머니의 이야기와 흔적을 사진으로 찍어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고 할머니를 기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 제목 역시 할머니의 흔적을 담아냈다. 이장욱 작가의 것을 내려놓고 할머니의 이름인 ‘수연’을 담아 <수수하게 연연하게>로 설정해 ‘막연한 하나를 특별하게 바라본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 작가는 앞으로도 수원지역에서 사라져가는 것 중에 사람의 흔적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수원에 사라지는 것들이 많다. 사라지는 것들은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며 “사라져 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담아내고 싶다”고 밝혔다.

김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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