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 인구 유출 심화, 저출산 가속...연천 218명 등 세자릿수 그친 곳도
“코로나19보다 출산율 떨어지는 게 더 무섭습니다”
18일 동두천 시내에 위치한 한 프랜차이즈 유아동복 판매점. 점주 김옥순씨(가명·55)는 긴 고민 끝에 폐업을 준비 중이다. 코로나19 때문이냐고 묻자 이 지역에서는 희망이 없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서 8년째 점포를 운영 중인 김씨는 지역에 아이들이 넘쳐났던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고객층이 정말 많았는데, (양주)신도시가 생기면서 젊은 층들이 대거 빠져나갔다”며 “코로나 때문이라면 버텨보겠지만 지역에 아기 울음소리 자체가 끊기고 있어 미래가 없다”고 푸념했다.
같은 날 양평군 양평시장. 이곳은 저출산 문제가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포털사이트 지도에서는 4~5개의 유아동 관련업체가 검색됐지만, 그 위치에는 이미 다른 점포가 들어선 상태였다. 어렵게 찾은 한 유아용품점에서는 “지금 양평군에는 유아용품점 1곳과 유아동복점 1곳 등 총 2개뿐”이라며 “시장 근처에만 관련 점포가 7개 정도 있었는데 5년 전부터 하나씩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경쟁업체가 줄어들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동복만 취급하던 이곳 유일의 유아동복점은 3년 전부터 청소년층의 옷가지들을 들여 놓으며 고객층을 넓히는 방안들을 구상 중이다.
최근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경기북부 지역은 더욱 위태로운 상황에 닥친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층의 지역 이탈이 심화되면서 저출산 문제가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경기도에서 7만6천946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다. 5년 전 10만7천305명보다는 28.29% 줄었고, 10년 전 12만3천815명보다 37.85% 감소했다.
경기도 전체로 봐도 저출산 문제가 심화하고 있지만, 지역별로 살펴보면 경기북부 지역의 저출산 문제는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경기도에서 태어난 7만6천946명의 신생아 중 경기 북부 10개 시·군에서 태어난 아이는 1만5천684명(20.38%)에 불과했다. 특히 고양(5천701명), 남양주(3천631명), 의정부(2천328명) 등 인구 유입이 많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연간 출생아 수가 세 자릿수에 그치는 지역도 많았다. 지난해 기준 포천시(544명), 양평군(477명), 동두천(342명), 가평군(257명), 연천군(218명) 등 경기북부 지역에서는 아주 적은 수의 아이가 태어났다.
이와 관련 양평군 관계자는 “경기북부 지역은 인프라 부족 등으로 인구 이탈이 가속화,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이고 현실을 고려한 지원책을 마련해 줘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청년층 유입 이끌… 지역 맞춤 ‘출산 정책·인프라’ 시급
경기북부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청년층은 떠나고 아기 울음소리는 끊기며, 노인만 늘어가고 있다. 경기북부의 출산율 저하는 관련 인프라의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또다시 젊은 층의 지역 이탈로 번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경기북부 지역의 소멸을 막기 위해선 지역 특색에 맞는 정책 추진으로 젊은 피를 수혈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라지는 경기북부…떠나는 청년층, 늘어나는 노인층
경기북부 지역이 소멸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은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8일 한국고용정보원과 통계청의 경기도 인구소멸지수(만 20~39세 여성 인구수/만 65세 이상 고령 인구수)를 보면 양평(0.3), 가평(0.3), 연천(0.3), 포천(0.5) 등은 이미 2005년부터 주의 단계에 들어섰으며, 2020년에는 위험 단계에 진입했다. 그나마 북부지역에서 출생율이 높은 양주(0.7), 파주(0.9), 남양주(0.9), 의정부(0.9) 등도 같은 해부터 주의 단계에 진입했다. 한국고용정보원에서는 이 수치가 0.5~1.0이면 주의 단계, 0.2~0.5면 위험 진입, 0.2 미만이면 고위험 단계로 본다. 경기북부 지역 10개 시·군 중 8개 시·군이 인구소멸 주의 단계를 넘어섰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젊은 층의 지역 이탈과 노년층의 지역 유입 증가가 주된 요인이다. 동두천시를 예로 보면 2020년 1월 기준 동두천시의 주민등록 인구는 9만4천719명에서 지난달 9만3천592명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가구수는 4만3천47가구에서 4만4천369가구까지 되려 늘었다. 인구가 줄었지만 가구수는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혼인한 2~3인가구가 지역을 떠나고 노년층 등 1인가구가 증가한 것으로 분석했다.
■왜 떠나는가…경기북부, 출산하려면 원정가야
경기북부 지역의 출산율 저하는 산부인과 등 관련 인프라 부족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말 그대로 ‘아이 낳을 장소’가 없다는 뜻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을 보면 연천군, 가평군 등에는 산부인과가 단 한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산부인과가 있는 양평군 등 일부 지역의 산부인과에도 분만실은 없었다. 당연히 그 흔한 산후조리원도 있을리 없다. 이 때문에 이들 지역에 거주하는 임산부들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다른 지역으로 원정 출산을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양평의 한 산부인과 관계자는 “분만실도 없고 인근에 출산 후 쉴 수 있는 산후조리원도 없어 출산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면서 “수요가 많지 않아 산부인과가 줄면 줄었지, 늘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역 특색 맞는 저출생지원정책 마련해야
경기복지재단은 최근 ‘인구소멸 위기상황, 저출생지원정책 예산은 어디에 쓰고 있는가?’(연구책임자 민효상)라는 보고서를 통해 인구소멸 위기 대응을 위해선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지역적 특색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추진된 저출생 정책은 소요된 예산에 비해 정책 체감도가 매우 낮다는 것이다.
시군별 출산관련 지원금(2019년 11월 기준)을 살펴보면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지역이 그렇지 않은 지역과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저출산 문제가 거론되는 지역의 지원금이 낮은 지역도 있었다. 예로 첫째 아이를 출산할 경우 동두천은 50만원, 가평군 100만원, 연천군 100만원 등을 지급한다. 출산율이 비교적 높은 경기남부 지역의 안양(100만원), 광명(70만원) 등보다 적거나 같다. 다만 다섯째 이상 다자녀 출산의 경우 가평(2천만원)과 양평(2천만원) 등 경기북부 지역 지자체에서 높은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효상 경기복지재단 연구위원은 “경기도의 합계출산율이 0.8대인데 다자녀 출산에 높은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면서 “출산율 등 현실을 고려, 지역 특색에 맞는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만 7세 이후의 지원정책도 부족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출산정책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대부분 출생 이후부터 7세 이전까지만 지원이 이뤄지는 정책들이 많은데,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선 학교 입학 등으로 부담이 가중되는 7세 이후 아이에 대한 지원금 제도도 마련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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