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경기도미술관 '지금 이따가 다음에'展

모눈종이 칸칸이 채운 시간별 색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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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은행황록지/매듭 없는 동그라미 시리즈 전시 전경/토끼풀 호행운록지(呼幸運綠紙)

‘수행(修行)’이라는 표현이 쓰였다. 하루 아침 단숨에 기록하지 않고 매일매일 고된 관찰을 하며 갈고 닦아 만든 작품이라는 설명이었다. 나날이 수행하듯 연마해 최종적으로 탄생한 이 작품은 빼곡한 모눈종이의 모습이다. 모눈종이를 칸칸이 채운 색채들은 각각 어떠한 의도와 의미를 담고 있을까.

경기도미술관은 이달 5일부터 8월15일까지 1층 프로젝트 갤러리에서 청년작가전 <박형진: 지금 이따가 다음에(Other Times Another Time)>을 연다. 앞서 2020년부터 시작된 청년작가전은 경기도미술관의 연간 프로젝트로, 동시대 미술에서 잠재력을 인정받는 경기지역 청년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내용이다.

올해는 박형진 작가가 참여해 직접 경험하고 바라본 주변 풍경의 ‘시간’을 화폭에 남겼다. 여름에는 산뜻하고 따뜻한 개나리 같은 노란색이, 겨울에는 무언가를 회상하듯 조금은 톤다운 된 은행나무의 노란색이 쓰인 식이다.

작가는 제 작업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나무의 색 변화를 모눈종이에 색점으로 표현했다. 작품 ‘색점’ 연작이 대표적이다. 시간을 거듭할수록 달라지는 그 나무의 시시각각 색을 한 칸 한 칸에 그려넣었다. 이 색점은 작가가 경험한 시간의 산물이며 반복된 일상에 숨겨진 자연 본연의 질서다.

작가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과거-현재-미래 순의 선형적 흐름이 아닌, 직접 경험하고 기억하고 재배치한 시간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 중 ‘은행나무’(2021~2022)와 ‘토끼풀’(2022) 두 시리즈는 경기도미술관의 지원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한 쪽 벽면을 가득 덮은 ‘매듭 없는 동그라미’(2020~2021)다. 전시된 모눈종이 장수만 120장에 달한다. 작가가 2020년 2월부터 1년8개월 동안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모눈종이에 동그라미를 채우고, 격리 해제된 수만큼 다시 지우고, 이를 반복하며 모두의 불안을 가시화한 작품이다. 그 지움의 흔적(지우개 가루) 또한 하나의 작품으로 남겼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조은솔 학예연구사는 “박형진 작가의 특징 중 하나는 본인이 관찰한 풍경과 느낌을 직접 조색해 모눈종이 위 시간으로 표현해내는 점”이라며 “같은 나무, 같은 풀이어도 똑같은 종이 위에서 다르게 나타나면서 조형성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동양화 요소를 기반으로 현대적 이슈를 더해 남다른 작품이라 전시하게 됐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전시는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디지털 리플릿으로도 즐길 수 있다. 전시실에 부착된 QR코드와 경기도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작품별 해설과 작가 노트 등 콘텐츠를 함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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