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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디좁은 방 한 켠에… 매일 삶을 욱여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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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디좁은 방 한 켠에… 매일 삶을 욱여넣다

도시 빈민층 종착지 ‘고시원’,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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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시계방향)인천 계양구 A고시원에서 김봉중씨(가명)가 초여름 날씨에도 겨울옷을 입은 채 TV를 시청하고 있다/서구 B고시텔에서 김기완씨(가명)가 우유 몇 개만 남아 있는 냉장고를 보여주고 있다/계양구 A고시원에서 한 입주자가 비좁은 복도를 지나가고 있다. 김지혜기자

도시에 빈곤이 숨어든다. 예전에 ‘쪽방촌’이 그랬듯이 이제는 고시원이 빈곤층의 종착지이다. 2010년 169곳이던 인천지역 고시원은 2021년 790곳으로 늘었다. 늘어난 고시원에는 이제 고시생 대신 독거노인, 건설 일용직과 노숙자 등 도시빈곤층이 찾아든다. 2013년 국민의 최저 주거권을 보장하는 ‘주거기본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여전히 빈곤층은 좁은 고시원에서 생을 마친다. 1명당 ‘최저주거기준’인 14㎡는 고시원 거주자들에겐 먼 나라 이야기다. 이들은 좁디좁은 방 한 켠에 삶을 욱여넣는다. 경기일보는 도시빈곤층인 그들의 최후 주거지, 고시원의 실상을 짚어보고 허울뿐인 주거기본법의 대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고시원은 IMF가 휩쓸고 간 2000년대 이후 우후죽순 늘어났다. 이 곳은 ‘고시생’ 대신 독거노인과 노숙인 등의 도시빈곤층이 가득하다.

고시원은 1990년대 후반부터 도시빈민층의 주거지로 전락한다.

25일 소방청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인천지역 고시원의 수는 지난 10년 동안 5배 가까이 늘었다. 고시원이 늘어난 만큼 고시원과 여관의 ‘달방’과 같은 ‘주택 이외의 거처’에서 생활하는 가구수 비율도 덩달아 높아졌다.

인천지역 ‘주택 외 거처’에서 생활하는 가구 수는 2006년 1.7%에 불과했다가 2021년에는 7.1%로 4.2배 늘었다. 경실련이 지난 5월 발표한 지역내 ‘주택외 거처 거주 노인 가구수’는 2015년 2천371가구에 불과했지만, 2021년에는 3천457가구로 45% 가량 늘었다.

2010년대 들어 도시재생이나 주거환경개선 사업 등으로 사라진 듯 보였던 쪽방촌이 장소만 옮겼을 뿐 여전히 고시원에 자리하고 있다.

인천 계양구 A고시원 4㎡ 남짓한 최순자씨(83·가명) 방에는 약 복용법이 적힌 ‘약 달력’이 걸려있다. 창문 하나 없는 방 안에서 최씨는 이불을 말아 침대로 쓴다. 베개는 철 지난 옷가지이다. 끼니로 보이는 과자 봉지와 우유곽이 침구 옆에 나뒹굴고 있다. 그는 지난 겨울 서구의 한 고시원에서 쫓겨나듯 이 곳으로 왔다. 정신질환과 치매를 함께 앓고 있는 탓이다. 홀몸인 최씨는 이 곳에서 생활관리사의 도움으로 근근히 버티고 있지만 병세가 심해 지면 언제 또 이 곳을 떠나야 할지 모른다.

A고시원 업주는 “최씨 할머니 같은 경우에는 자식도, 손자도 없으니 이 작은 방이 유일한 집이다”며 “지난 10여년간 고시생이 입주를 한 적은 1번도 없었다”고 했다. 이어 “보증금도 없고, 20~22만원 짜리 낡은 방에서 사는 이들은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거나 독거노인일 뿐이다”고 했다.

캄캄한 사람들, 웅크린 인생

고시원 사람들은 눈이 마주쳐도 인사가 없다. 대부분 ‘인생의 끝자락’에 혹은 ‘잠시 지낼 임시거처’ 쯤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옆 방 문의 열고 닫는 소리와 TV 소리로 이웃의 생사를 확인한다.

■ 최후의 주거지, 그곳서 살아가는 이들

인천 계양구 A고시원에서 1년째 생활하는 김봉중씨(68·가명)는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한 때 지역 곳곳을 누비며 건축현장을 다니던 그는 이제 막걸리 1병에 끼니를 때우고, 담배 1갑으로 시간을 보내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3층 맨 끝에 있는 그의 방은 햇빛이 들지 않는, 제 역할을 잃은 작은 창문 하나가 유일하게 밖과 소통하는 창구다.

불과 지난해 겨울, 김씨는 칠흙같이 어두운 고시원 방에서 살던 친구 2명을 차례로 떠나보냈다. 그는 홀로 방 안에서 최후를 맞았을 친구들을 떠올리며 고시원을 “인생 마지막에 오는 곳”이라고 연거푸 되뇌었다.

김씨가 매달 22만원을 내고 사는 306호는 채 7㎡가 되지 않는 방이다. 그가 머무는 곳에는 모두 쓰다 버릴 것들 뿐이다. 간직하거나, 추억할 만한 것들은 없다. 기본 옵션인 10인치 TV와 고장난 라디오, 조그마한 냉장고, 책상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그에게 허락된 공간은 몸을 겨우 누일 정도다.

서구 B고시텔에 2년째 살고 있는 김기완씨(74·가명). 건설 일용직 일을 하던 그는 고시원에서 길거리로, 다시 고시원으로, 서울 영등포와 경기 부천 등을 떠돌며 살아왔다. 매달 손에 쥐는 기초노령연금과 기초생활수급자 지원비로는 방값도 부담스럽다. 그러나 아픈 몸을 누이기 위해 고시원은 포기할 수 없는 최후의 공간이 됐다. 그는 오랜 고시원 생활로 병을 얻었다고 했다. 좁은 틈에서 몸을 웅크리고 자다 관절염이 왔다. 창문 조차 없는 좁은 방에서 지내다 보니 기관지도 성하지 않다. 냉장고 밑엔 그가 챙겨야 할 약봉지가 수북했다.

그는 방문을 닫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살기 위해서다. 창문이 없어 온몸을 조여오는 압박감을 이렇게라도 풀기 위해서다. 김씨는 “여름이면 복도 창문이나 방문을 열어 환기하는 것마저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에어컨을 틀어도 방이 너무 많아 시원하지 않을 것이 걱정”이라고 했다.

■ ‘인간답게 살 권리’ 주거기본법은 유명무실... 최저주거기준 실효성 갖춰야

‘주거기본법’에는 1인 가구가 인간 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 기준을 14㎡ 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 벌칙 조항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시원 대부분이 최저주거기준인 14㎡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4~5㎡ 수준이다.

인천시는 이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고시원 면적 리모델링을 권장하고 있으나, 업주들은 리모델링 강제성이 없는데다 수익 감소 등을 이유로 기피하고 있다. 반면에 서울시는 모든 신설 고시원의 방 1칸당 최소면적기준을 7㎡이상 강제 적용토록 건축조례를 개정했다.

김은정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고시원은 화재에 취약할 뿐 아니라 건강한 삶으로부터도 떨어져 있다”며 “주거기본법에 제재방안이 없는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초 공급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어 “영국과 미국은 공급부터 최소주거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허가를 내지 않는 형태의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인천시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최저주거기준을 정할 수 있는 조례를 마련하는 등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대해 고민하겠다”고 했다.

김지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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